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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샘

관리자 | 2012.04.12 18:03 | 조회 8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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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1~38장)

 

차례 
서문 
제 1 장 예루살렘 회복과 40년의 예언------------------------1 
제 2 장 일곱 우뢰의 비밀을 개봉---------------------------10 
제 3 장 삼차의 칠개절기----------------------------------18 
제 4 장 생명과와 십계명----------------------------------29 
제 5 장 모세와 예수님------------------------------------34 
제 6 장 약속의 자손과 남은 백성--------------------------  42 
제 7 장 14만 4천 숫자에 대하여---------------------------  50 
제 8 장 최후의 재앙과 심판------------------------------- 52 
제 9 장 유월절의 신비------------------------------------58 
제10장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72 
제11장 교회의 역사책에서 진리를 밝히자-------------------76 
제12장 하나님의 비밀------------------------------------87 
제13장 예수님에 대하여----------------------------------92 
제14장 성삼위일체에 대하여----------------------------- 106 
제15장 성령에 대하여 -----------------------------------118 
제16장 초림 예수와 마지막 예수 -------------------------  123 
제17장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130 
제18장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남 -------------------------- 140 
제19장 멜기세덱의 반차 ---------------------------------146 
제20장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남 -------------------------- 151 
제21장 암행시에 나타나실 그리스도와 다윗왕 --------------156 
제22장 시온성에 계시는 육체의 하나님-------------------- 163 
제23장 십계명과 의문 -----------------------------------166 
제24장 에덴동산에 선악과는 왜 두었나? ------------------  170 
제25장 안식일과 안식천년 -------------------------------173 
제26장 완성품과 미완성품 -------------------------------175 
제27장 사람의 영혼은 어디서 왔는가? --------------------  185 
제28장 하나님의 산 기운으로 영혼을 만드심 --------------- 190 
제29장 영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 ----------------- 202 
제30장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 --------------------  206 
제31장 천사세계에서 왜 죄를 짓게 하셨는가? -------------- 208 
제32장 옛 언약이 새 언약으로 변역함 --------------------- 212 
제33장 새 언약의 제도 ---------------------------------- 219 
제34장 유월절과 마지막 만찬 ---------------------------- 230 
제35장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 ---------------------------- 241 
제36장 엘리야를 보내리라------------------------------- 251 
제37장 늦은 비 성령에 대한 예언 ------------------------   264 
제38장 생명수의 샘------------------------------------- 269

 

서문


이 책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 4장5절, 6절의 말씀과 같이「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하시었고 아모스 선지자는 기록하기를「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장7절)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남은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마지막 비밀입니다. 
이제는 때가 차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므로 성경에 인봉해 두라고 한 모든 비밀이 (사8장16절, 단12장4절, 9~10절, 계10장4절 참고) 다 깨우쳐져야 할 때입니다. (계10장7절, 22장10절)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멜기세덱의 반차와 다윗왕의 역사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문제에 있어서 단번에 불에 옹위되어 심판주로 강림하실 것인가? 아니면 암행어사로 잠깐 육체를 쓰시고 와서 증거하신 후 최후 마지막 심판주로 강림하실 것인가? 이 모두가 다 무심코 넘겨 보낼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갈망하시는 독자 여러분께서는 누구나 다 연구 하셔야 할 책입니다. 

일반 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목사님들이나, 신학교 교사님들까지도 꼭 한번 읽어두셔야 할 책입니다. 

옛날 침례요한의 때나, 예수 초림의 때와 같이 마지막 진리도 큰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보시고 읽어보시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제는 그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아들이는 마지막 때입니다. 누구든지 진리를 갈망하시는 분이 계시오면 이 책을 연구하시고 잘 이해가 안가시면 지체마시고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대면해서 연구하시게 되면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목록에 기재된 제목과 같이 오늘날 일반 기독교회에서나 신학교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누구든지 연구만 하시면 잘 이해가 되면 깨달아질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자 하시는 분은 틀림없이 이 교훈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마지막 기별로 인정될 것입니다.(요7장17절) 
심각히 연구하시고 한번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주소:부산시 해운대구 우일동 944의6호

저자 안 상 홍

 

제1장 예루살렘 회복과 40년의 예언


모세의 약력을 대강 살펴보자면 주전 1578년경 애굽나라 나일강 지방에서 아담의 26대손으로서 부친은 아므람이요 모친은 요게벤이다. 모세는 레위지파로서 120세까지 3중생활로 살아왔다. 
1차에는 애굽 바로왕의 궁중생활로, 공주의 아들로 40년을 지냈고 (출2장1~15절,행7장22~36절) 
2차에는 미디안 제사장의 집에 가서 양을 치며 목자의 노릇을 하면서 40년을 지냈다. (출2장16절~22절, 7장7절) 
3차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고 120세에 세상을 떠나시니 때는 주전 1458년경에 모압땅 벳보올 맞은편 골짜기에 장례하였다.(신34장7절) 
그런데 40년씩 3중생활을 살아온 것이 무슨 뜻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40일과 40년이 꼭 붙어다니고 있으니 그것 또한 무심히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기록된 바,

[겔4장6절]「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하시었고 
[민14장34절]「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40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하시었다. 
모세가 두 번씩 40일 금식한 것도 죄악의 땅에서 40년씩 두 번 지낸 허물을 벗어 버리게 되었고 (출24장18절, 출34장28절 참고) 광야 생활 40년은 정탐일로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가서도 40년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삿3장11절]「그 땅이 태평한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하였으며 또는 
[삿5장31절]「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40년 동안 태평하였더라」하였고 또는 
[삿8장28절]「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 날 동안 40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하였으며 또는 
[삿13장1절]「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하였으며 또는 
[삼상4장18절]「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40년이었더라」하였다. 그리고 사사시대가 지나서 이스라엘 왕권시대로 들어와서도 첫 임금 사울부터 40년의 역사가 나타난다. 기록된 바, 
[행13장20~21절]「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하였으며 또는 
[삼하5장4~5절]「다윗이 30세에 위에 나아가서 40년을 다스렸으되」하였으며 또는 
[왕상11장42절]「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날 수가 40년이라」하였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시대에 가서 남북이 갈라졌다.

 

그리고 요나 당시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성에 들어가 40일후 이 성이 무너지리라 하고 외치라 하셨지만 요나는 니느웨성 사람이 두려워서 외치지 못하고 욥바에서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결국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기도하였다. 그후 요나는 회개하고 니느웨성에 들어가 외치게 되었다. 
[욘3장4절]「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여 외쳐 가로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하였다. 이 니느웨성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마12장39~40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하시고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하심같이 예수님은 요나를 대신해서 예루살렘 성이 40년만에 무너질 것을 내다보시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다. (눅21장20~24절) 

예수님께서 30세에 침례 받으시고 3년만에 십자가에 돌아가셨다지만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신 때로부터 사십년만에 성이 함락되었다. 여기에 대해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하기를 
[겔4장6~7절]「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 메고 예언하라」하신 이 예언이 예수님께서 유다 족속의 죄악을 40년동안 담당하시려고 40일 금식까지 하셨던 것이다. (마4장1~2절) 그리고 노아 때에도 40일간 비가 내려 전멸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마24장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하시었다. 그 때에는 비가 40일간 내려 멸하였지만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 40년간 내려 선포한 다음에 최후에는 불로 멸망할 것이다. 기록된 바, 
[벧후3장6~7절]「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노아의 때 세상은)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이 불에 대하여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렘5장14절]「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하시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40일간 고행의 길을 걸어간 일이 있었다. (왕상19장8~9절) 이 예언의 성취도 마지막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최후 심판의 때를 선포할 것을 보이신 것이다.


「엘리야」라는 이름을 번역한즉「하나님, 여호와」이다.「엘리」는 하나님이요,「야」는 여호와이다. 엘리야는 역사상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 승천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그 엘리야가 다시와서 호렙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최후 심판을 40년간 외치며 택하신 백성 14만 4천 성도들을 모으므로 끝이 날 것이다. 엘리야는 멜기세덱과 같이 비슷한 형편에 놓여 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는 거의 다 부모의 이름이나 족보가 있지만, 엘리야와 멜기세덱은 부모의 이름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이나 끝도 없다. 
말라기 선지자는 최후 마지막으로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고 하였다. 
[말4장5~6절]「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하시었다. 
예수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침례 요한도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것은 사실이지만, 마지막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모든 진리를 회복하고 최후심판을 선포하게 됨으로 세상 끝을 마치게 될 것이다.

위에 기록한 40일과 40년의 비밀은 이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모든 예언은 끝날에 이스라엘40년의 예언과 영적 이스라엘 40년으로 끝이 맺어질 것이다. 위에 기록한 40일과 40년 역사의 비밀을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눅21장24절]「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위의 예언의 말씀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고 이방인의 때가 찬 주후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나라는 독립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시기를 
[마24장32~34절]「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하시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왜 하셨으며 또 무화과 나무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대게 나라마다 짐승이나 혹은 나무로 표상하기도 한다. 일본은 벗꽃 나무로 표상하고, 한국은 무궁화로 표상하듯이 이스라엘 나라는 무화과 나무로 표상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무화과 나무는 옛적 에덴동산에서부터 있던 나무로써 존속해 내려온 나무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 (창3장7절) 또 이스라엘 나라도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의 계통이 이어 내려와 있으므로 무화과 나무와 이스라엘 나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1948년에 독립하여 지금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무성한 시기에 놓여 있다. 
그러면「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하셨으니 우리는 여기서 좀더 확실한 것을 알아야 할 때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위에서 연구한 바와 같이 40년만에 큰 변화가 수차에 걸쳐 생기곤 하였으니 위의 역사는 종말에 나타날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신하겠다. 그렇다면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하였으니 40년이 지나면 1988년이 된다. 그때에 과연 지구가 종말이 올 것인가? 아니면 옛날의 역사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가 약간의 변동만 있고 말 것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하셨으니 분명코 그 때가 끝날이 될 것이다. 
욥기에는 기록하기를 
[욥14장5절]「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하셨다. 이 40년의 예언은 이것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암행어사로 오시는 다윗왕의 예언과 멜기세덱의 반차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연구하시면 마지막 때를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시었으니 누가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여 보기로 하자.


■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마24장36~39절]「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가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하시었다.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셨는데 아들이신 예수님의 근본을 연구하자면 아들이나 아버지는 한분이시다. 기록된 바, 
[빌2장5~8절]「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면 하나님이 아시는 것은 예수님도 알게 되어있다. 기록된 바, 
[요10장30절]「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하시었다.「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신 말씀은 1900여년전 육체로 오셨을 때에는 아들도 모르시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끝날에 가서는 사랑하시는 당신 백성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약속의 시기에 와서는 아버지만 아시는 그 날을 아들에게 주어서 선포하게 하시고 마지막 심판을 내리시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하셨으니, 노아의 때에 아무도 몰랐느냐 하면 노아에게는 분명히 알려주셨다. 

[창7장4절]「지금부터 일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하시었으니, 노아에게는 분명히 알려주셨다.「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하셨으니 마지막 최후 심판 때에도, 구원받을 성도들에게는 그 날과 그 때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임하시게 될 것이다. 기록된 바, 
[암3장7절]「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하시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살전5장1~5절]「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하였다. 빛의 아들 즉, 택한 백성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며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기록하기를 
[계3장1~3절]「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하시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에게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하시었으니,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 오시는 것을 모른다는 말씀이다.

 

제2장 일곱 우뢰의 비밀을 개봉


기록한 바, 
[계10장4절]「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하시었다. 
그러면 일곱 우뢰가 영원히 봉한 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개봉이 될 것인가? 
성경에 기록한 말씀 중에는 뜻이 없는 말씀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봉하라고 하신 뜻은 개봉할 때가 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인봉하라 하신 일곱 우뢰는 같은 장 7절에 개봉될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기록한 바, 
[계10장7절]「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하시었다. 이 비밀은 초대교회시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전해 주신 새 언약의 복음이다. 이 새언약의 복음이 사도시대 이후 사단에게 밟힘을 당하고 암흑세기를 지낸 오늘날까지 봉해져 있었던 새 언약의 복음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심과 같이 마지막 때 분명히 이루워지고 있다. 기록한 바, 
[계22장10절]「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하시었으며 또는 
[사60장22절]「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하였다. 성경 말씀 중에는 우뢰라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는 바, 그 음성을 바로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음성이 우뢰소리로 들린 것이다. 기록한 바, 
[요12장28~29절]「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하시었다. 
사도 요한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다. 이 요한 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뢰소리로 듣고만 것을 이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기록하기를「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하신 그 음성을 요한은 바로듣고 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우뢰도 요한은 바로듣고 기록하려고 하였지마는 인봉하라는 명령이 있으므로 그 내용을 기록하지 못하고 그저 일곱 우뢰라고 기록하고 말았다. 
그러면 그 일곱 우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일곱 우뢰의 비밀이 지금까지는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때가 되어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이 되었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깨닫게 되었는데 누구든지 아래 기록한 해석들을 연구해 보시면 확실하게 이해가 되실 것이다. 그러며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일곱에 대한 숫자를 연구하고 그 다음에 우뢰를 연구해야 순서이다. 
일곱수는 완전수인데 일곱을 완전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일곱 우뢰를 완전한 우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완전한 우뢰는 어디에서 발하였는가? 완전한 우뢰는 한사람이나 두사람 앞에서 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가 아니라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발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다. 이 완전한 우뢰소리가 발표된 때는 주전 1498년경 시내산 화염중에서 십계명과 언약의 말씀을 발표하실 때 우뢰소리로 발표하셨다. 기록한 바, 

[출20장18~19절]「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하였다. 그 때에 우뢰같은 음성을 모세는 들을 수 있었으나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일곱 우뢰만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일곱 우뢰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하였던 것이다. 기록한 바, 
[신5장5절]「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 하나님과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하였다. 
그리고 성경말씀 중에는 반드시 짝이 있다. 그 짝을 찾아서 성경으로 그 성경을 해석하게끔 되어있다. 
[사34장16절]「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하시었다. 그리고 인봉하라는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8장16절]「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하시었고 옛날 성경에는「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하여 나의 제자 중에 맡겨라」하시었다. 요한계시록 10장4절에「일곱 우뢰를 인봉하라」, 이사야 8장16절에는「율법을 인봉하여 나의 제자 중에 맡겨라」하였으니 일곱 우뢰가 율법중에 어느 부분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율법 중에 오늘날까지 인봉되어 있었던 것은 3차 7개절기 뿐이다. 이 일곱 우뢰의 비밀인 3차 7개절기 속에는 하늘성소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마귀의 소굴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만세 전에 감추어 두셨던 보물이 무엇임을 알게 될 것이며 장차 당할 교회문제가 예언되어 있다. 
옛날 요시야왕이나 히스기야왕도 절기를 모를 때에는 우상들을 섬기다가 절기를 깨닫고 지키게 될 때에는 우상들을 다 전멸시키고 말았다. (왕하23장21~25절,대하30장1~27절, 대하31장1절 참고) 혹은 말하기를 왜 그런 문제들을 인봉해서 복잡하게 하시는가 하고 질문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완전하게 알 수는 없으나 성경에 기록한 말씀으로 보아서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한 특별한 선물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13장10~11절]「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하시었다. 그리고 봉해두신 것을 최후 비상시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셔서 구원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기록한 바, 
[단12장4절]「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하였는데, 공동번역에는「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하시었으며, 또는 
[단12장9~10절]「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하시었다.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시었는데 이 악한 자가 누구인지 성경으로 찾아보면 반드시 나올 것이다.

기록한 바, 
[느13장17절]「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악이라고 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의 지혜를 없이하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진다고 하시었다. 기록한 바, 
[사29장13~14절]「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하시었으며 그와 반대로 기록한 바, 
[계14장12절]「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지혜받는 사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엡1장7~9절]「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 셨으니」하시었다. 
[단12장10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하신대로 새 언약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지혜와 총명이 넘쳐 흘러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택하신 선지자에게 알게 하신 다음에 그분을 통해서 진리를 받아들인 여러분에게 알게 하신다. 기록된 바, 
[암3장7절]「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하였다. 

하나님의 비밀은 각각 그 정한 때가 있고 또 마지막 비밀인 일곱 우뢰도 그 정한 때에 그 정한 사람을 통하여 인을 떼고 개봉할 것이다. 
이것을 봉하여 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업이 크게 방해를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곱 우뢰를 봉한 것은 옛날 바벨론나라의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잊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왕이 꿈을 잊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이나 점쟁이나 술객들이 거짓으로 그릇되게 해몽했을 것이다. 그 왕의 꿈은 세상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나라를 차지할 중대한 문제인데 그릇되게 해몽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꿈을 잊어 버리게 하고 바른 해석을 할 사람 다니엘에게 맡기게 하신 것이다. 
[단2장9절]「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하였다. 
그러나 그 꿈을 알게 하거나 해몽하지 못할 경우에는 바벨론 박사나 점쟁이나 술객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백성인 다니엘과 세친구까지도 다 죽임을 당하는 중대문제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몽 할 수 없도록 하고 다니엘로 그 꿈을 알게 해서 다니엘의 해몽이 정확하다고 인정을 받게 하신 것같이 이 일곱 우뢰도 교회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석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 곧 거짓교회 박사들이나 하나님의 백성까지도 다 영혼의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왕의 꿈을 잊어버리게 하신 것같이 일곱 우뢰도 인봉하게 하사 개봉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깊은 진리를 해석할 때 그 진리를 깨닫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믿게 하시려고 봉하게 하신 것이다. 
만일에 이 일곱 우뢰를 인봉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모든 거짓교사들이 거짓 해석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릇되게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곱 우뢰가 마지막 교회의 운명이 달린 엄숙한 진리이기 때문에 인봉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봉한 일곱 우뢰는 누가 인을 떼고 개봉할 것인가?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계5장1~6절]「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의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하였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라 하셨으니 마지막 때 다윗의 이름으로 암행으로 오시는 어린 양이 일곱인을 떼시는 동시에 인봉한 일곱 우뢰도 개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곱 우뢰의 개봉은 100년이나 200년전에 생긴 교회에서는 있을 수 없고 마지막 한 세대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언하셨다. 
[마24장31~34절]「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을 다 이루리라」하시었다. 이 말씀은 마지막 한 세대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는 살아서 변형을 입고 승천할 교회이기 때문에 40년 이전의 교회에서는 마지막 비밀인 일곱 우회의 개봉은 있을 수 없다. 
만일 어떤 교회 신자중에 일곱 우뢰의 비밀을 깨닫고 증거할찌라도 그 교회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각 교회의 전통이 그 교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는 40년 안에 마쳐질 교회가 마지막 교회이다.

 

제3장 삼차의 칠개절기


모세 율법에는 일년 중 삼차의 칠개 절기(三次의 七개 節期)가 있는데 칠개 절기가 삼차로 조직되어 있으니「출애굽기」에는 삼차절기에 대한 기록을「무교절(無酵節)과 맥추의 초실절과 수장절」이라고 하였으며(출23장14~17절, 34장18~23절), 「신명기」에는「무교절과 칠칠절(七七節)과 초막절」이라고 하였으며 (신16장16~17절)「역대하」에는「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이라고 하였다. (대하8장13절) 그러면 왜 삼차의 절기명이 각각 다른가? 이는 그 절기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절기명이 두세가지씩 있으나 절기명이 다르다고해서 절기가 다른 것은 아니다. 즉, 맥추절과 칠칠절은 같은 절기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수장절과 초막절과 장막절은 다같은 칠월절기(七月節期)에 속한 것이다.그리고 삼차절기라고 해서 절기가 세가지 뿐이 아니라 삼차의 칠개 절기가 있는데 본명과 비명을 합해서 15개 절기명 이상이 있고 모세 율법에 들지 않는 부림절이나 수전절(修殿節) 같은 것이 있다. (에9장21절, 32절, 요10장22절) 
그리고 칠개절기 본명은 다음과 같다. 유월절(逾越節), 무교절(無酵節), 초실절(初實節), 오순절(五旬節), 나팔절, 속죄일(贖罪日), 초막절(草幕節) 이 일곱가지 절기가 삼차로 나뉘어져 있으니 
1차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조직되어 있으며 
2차에는 초실절과 오순절이 조직되어 있고 
3차에는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이 조직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일곱가지 절기명을 다른 말로도 부르고 있는 바 무교절은 칠일절(七日節) 이라고도 하며 (겔45장21절), 초실절을 요제절(搖祭節) 이라고도 하며 (레23장11절, 출23장15절~16절, 출34장22절), 장막절을 초막절(草幕節)이라고도 하는데 (스3장4~6절, 요7장2절)이 일곱가지 절기를 여러 모양으로 부르고 있으니 모든 절기명이 다음과 같다. 무교절, 유월절, 칠일절, 맥추절, 초실절, 요제절, 칠칠절, 오순절, 수장절, 추수절, 칠월절, 구려절, 장막절, 초막절, 나팔절, 속죄일 이와 같은 절기명이 있으나 삼차의 칠개 절기를 그와 같은 여러 모양으로 부르고 있다.(느8장2절,14절, 출23장15~17절, 34장18~22절, 레23장10~16절,39~41절,신16장9~10절 참고)


■ 절기와 예언

 

여호와께서 이 삼차의 칠개절기를 정하심은 장차 예수께서 십자가로부터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루어질 것을 모세의 행적으로 정하신 것인데 이 칠개 절기가 삼차로 분할되어 있으니 
1차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같이 시작되는 바, 성력 정월14일 저녁 부터 21일 저녁까지 칠일간 무교병(無酵餠) 곧 누룩넣지 않은 떡을 먹으며 해마다 이 날들을 기념하였는데 (출12장18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저녁에 여호와의 능력으로 애굽을 떠나 홍해 바다를 건너기 까지의 고난을 기억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기념하기 위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정하여 대대로 지키게 한 것이다. (출13장7~8절) 이 절기에는 고난을 표시하기 위하여 쓴나물과 무교병을 사용한 것이니 무교병을 고난의 떡이라고도 하였다. (신16장3절, 출12장17~18절, 민9장11절, 레23장5~6절, 대하35장17절, 막14장12절) 
이 절기의 실상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신 후에 그날 밤부터 고통이 시작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육신으로 운명하시는 때까지의 고난을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홍해 바다에 들어간 것은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가실 것을 표상한 것이요, 바다에서 상륙한 것은 주님의 부활을 표상한 것이니 우리가 받고 있는 침례로 그 뜻을 보이시는 것이다. (고전10장1~2절, 벧전3장21절) 
2차로 맥추절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 (일요일)에 맥추중 처음 익은 열매를 한단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요제(搖祭)로 드리고 그 후 칠안식일 다음날 합5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새 소재를 드린 것이다.(레23장10~16절, 출34장22절, 민28장26절, 신16장9~10절, 행2장1절) 이 절기를 정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 홍해 바다를 건너던 날 정월 21일부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날 3월 11일까지 합50일이 된고로 (참고 출19장,16~25절, 24장1~18)이 날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맥추절을 정하여 대대로 기념하게 하였으니 (출14장29~31절, 19장1~2절, 24장12~16절) 
이 일의 실상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던 날 곧 오순절까지 합50일째 되는 날이다.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아오는 것은 장차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 들어가서 성령을 받아 제자 들에게 부어주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행2장1~4절,히9장11~12절) 
그리고 모세가 홍해바다에서 상륙한 날 정월 21일부터 합 40일째 되는 날 성력 3월 초일일에 시내산 앞에 장막을 치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간 일이 있었으니 이 일의 실상도 예수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실 것을 보이신 것이다. 
[출19장1~7절, 행1장3~9절] 공동번역에는 출애굽기 19장1절에 「3월 초하룻날」이라고 하였다. 그런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행한 것이,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3차로 추수절을 칠월절기라고도 하는데 (느8장 13~14절) 성력 칠월 초하룻날 나팔을 크게 불어 대속죄일의 준비를 하고 성력 칠월 십일에 대제사장은 자기와 백성의 죄를 위하여 황소와 염소의 피로 속죄제를 드리고 일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것이며 성력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간 초막절을 지켜 모든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 감람나무와 종려나무 가지를 취하여 초막을 지으며 집 위에나 성전 뜰에 깔고 그 안에 거하며 모세로 말미암아 지은 성막기념을 하였던 것이며 서로 도와주고 연락하며 즐거워하였다. (신16장11~15절, 레23장39~43절, 느8장9~18절) 이 절기를 정하심은 모세가 첫 번 십계명 받으러 3월 11일에 시내산 여호와 앞에 들어가 (출24장15~18절) 40일을 지내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됨으로 모세는 4월 21일에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다가 그들의 광경을 보고 들고 내려오던 십계명을 산아래 던져 깨뜨려버렸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내란이 일어나 크게 재앙을 받아 3,000명의 사람이 사망을 당하기도 하였다. (출32장1~28절) 그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 마음을 수습하고 모세가 영 바깥 먼곳에 장막을 옮겨치고 백성들은 단장품 같은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마음을 정결케 한 후 영 바깥 회막으로 나가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출33장1~11절) 모세가 여호와께 간절히 간구함으로 여호와께서 다시 은혜를 베푸사 전에 깨뜨린 석판 둘을 만들어 가지고 올라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출33장12~17절)

 

■ 십계명 받은날


모세는 6월 초일일에 전에 깨뜨린 석판과 같은 석판 둘을 만들어 가지고 시내산 여호와 앞에 올라가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지내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그 석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신 것이다. 모세는 성력 칠월 십일에 그 십계명을 받아들고 내려와 모든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과 성막 지을 여러가지 문제를 다 공포하고 그달 7월 15일부터 성막지을 재료 금, 은, 포목, 피물, 목재 등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바쳐 풍성하게 하였다. 
[출34장4~35절, 36장5~7절] 약 7일 동안 백성들은 자진 노력을 다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려고 모세의 행적을 따라 절기를 정하였으니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들고 내려오던 날을 대속죄일로 정하시고 백성들이 성막지을 재료들을 바치기 시작한 날을 초막절로 정하사 칠일간 거룩하게 지켜 성막짓던 형식을 기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팔절을 칠월 초하룻날로 정하시게 된 것은 나팔절은 대속 죄일의 준비가 되는고로 칠월 초일일을 나팔절로 정한 것이다. 그런고로 모세가 첫 번 십계명을 받으로 시내산에 올라갈 때 올라가던 날을 택하여 오순절을 정하셨으니 이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친히 십계명을 반포하셨으므로 (출20장1~19절, 24장15~18절)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던 날을 택하여 오순절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갈 때 모세가 산에서 40일 금식한 후 십계명 받은 그날을 택하여 백성들의 죄사함을 받는 대속죄일을 정하신 것이다.


■ 초막절과 예언


이 모든 절기는 장래일의 그림자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께 십계명을 받아 백성들에게 준 것을 장차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시므로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 주실 것을 보이신 것이다. 
[행2장32~33절] 그러나 모세가 먼저 받았던 십계명을 깨뜨리게 된 것은 백성들이 금송아지 두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로 그 십계명을 깨뜨리게 한 것같이 예수께서 첫번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던 오순절 날에 하나님께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은, 교회가 부패하여 태양신을 섬기게 됨으로 그 성령을 도로 거두신 바 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줄기 빛만이 남아 내려오게 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왕상11장36절]「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하신 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범죄함으로 그 나라가 두 나라로 분리될 시에 하신 말씀이다.(왕상11장1~13절) 그러나 이 예언의 성취가 사도시대 이후로 성취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교회는 심한 핍박을 받고 오랫동안 사단에게 짓밟힘을 당하였다. 그리고 모세가 두 번째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은 것은 장차 예수께서 두 번째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므로 말세 복음사업을 위하여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게 된 것이다. 
그런고로 삼차의 칠개절기는 그 속에 진리가 무궁한 것이며 모세때로 부터 세상 마지막까지 이루어질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삼차절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시대를 표상하사 각각 그의 권능을 나타내셨으니

첫째는, 무교절이니 성부시대라고 할 수 있는 바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시므로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셨으며

둘째는, 맥추절인 바 곧 성자시대라고 하나니 예수께서는 맥추의 처음익은 곡식이 되사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하시고 (고전15장20절) 승천하사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므로 이른비 성령을 내리사 초대교회 시대의 맥추의 농작을 다 거두셨으며

셋째는, 초막절이니 성령시대라고 할 수 있는 바 가을 농작의 마지막 거두는 추수 때를 가리킨바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알곡을 다 하늘 창고에 거두어 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절기는 현재까지 다 이루어졌으나 마지막 절기가 한가지 남아있으니 이는 초막절이다. 
이 절기는 예수 재림하실 기일선포를 받은 후에 예수 재림운동이 있을 것을 표상한 것이다. 
옛날부터 지켜 내려오던 초막절의 마지막 성취가 마지막 예수재림운동이다. 화잇부인은 이 초막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초막절에는 기념하는 의미 이외에 상징의 의미도 있었다...... 주께서 알곡을 곡간에 모아들이기 위하여 추수꾼을 보내시는 최후의 수확의 날을 예표하였다.」 (p541)하였다.


■ 절기와 십자가


지금 우리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무엇을 행하시고 계시며 지금 이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 알 수 있도록 준비하셨으니 이는 모세 율법으로 말미암은 지상성소 문제를 연구하게 됨으로 하늘 성소를 보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장막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장차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하늘성소 문제를 보이시고 그대로 모방하여 지으라고 하신 것이다. 기록된 바, 
[히8장1~5절]「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찌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다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하였다. 
그런고로 모세가 본 하늘 성소는 그 당시 것이 아니라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께서 세우실 하늘 장막을 보이신 것이다. 지상 성소를 연구 함으로 하늘 성소에 관한 긴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하시는 주님의 봉사가 무엇임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지상 성막은 우리의 선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니님 앞에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를 인류가 볼 수 있도록 그 모형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고로 성소 문제를 연구하지 않고는 구속의 경륜을 깨달을 수 없고 구속의 경륜을 깨닫지 않고는 구원을 알 수 없다. 삼차의 칠개절기를 따라 행하던 의문의 제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신령과 진실한 기도의 제사로 번역된 것이다. (히7장12절, 8장3절, 고전5장7~8절,요4장24절)


■ 예수님은 몇가지 제물이 되셨는가?


십자가는 모든 절기를 다 한꺼번에 완성시키셨으니 그의 보혈은 유월절 양의 피도 되시고 제사장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황송아지의 피도 되시고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수염소의 피도 되사 영원하신 속죄 제물이 되셨으니 (히13장10~12절,롬3장25절) 십자가의 고난과 육신의 운명하심이 마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의 땅 애굽을 떠난 것과 같은 무교절을 이루셨으며 초실절에 부활하심으로 맥추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 요제의 제물을 이루셨으며 부활하신 후, 첫 오순절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 주신 것이며 (히9장11~12절, 24절,6장19~20절, 행2장33절 비교) 주후 1844년 성력 7월 10일에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심으로 대속죄일을 이루셨으니 십자가는 영원한 새 언약의 표가 되사 이 세상 끝날까지 기념을 행하는 것이다. (고전11장26절, 사33장20절,습3장18절) 
모세 율법에는 이 모든 규례를 「평생토록 기억하라 영원한 규례니라」(출12장14절,25절, 레23장21절, 신16장3절) 하시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그 예식에 참예함으로 그 예식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유월절의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며 초실절과 오순절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그 절기에 관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세 율법으로 말미암은 3차의 7개절기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권능의 날로 변경된 것이다. 
그런고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거룩하게 지키므로 복을 받은 것과 같이 (출20장24절, 습3장18~20절, 스6장19~22절, 말2장4~9절 비교)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권능의 날들을 기억함으로 신령적 복을 받는 것이다. 예배하는 곳은 하늘 성소이니 이 성소 안에서, 예수님의 새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새긴 바 됨으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다. (히12장18~24절, 8장6~10절, 고후3장3절 비교) 어디든지 언약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제4장 생명과(生命果)와 십계명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동산에다 생명과를 두시고 인류시조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따먹고 영생하라고 하였으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두 그룹천사와 두루 돌며 번쩍이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기록한 바, 
[창3장22~24절]「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 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하였다. 
만일에 죄인의 손으로 생명나무에 손을 댄다면 화염검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생명과를 잃어 버린 아담은 바울의 말한 바와 같이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롬7장24절)하고 자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과를 다시 먹을 수 잇는 진리를 보이셨으니 이는 십자가에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생명과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멀리 보았던 것이다.(히11장4절, 13절) 그러므로 그 진리를 가인과 아벨에게 증거하였으나 가인은 그 진리를 받지 않고 자기의 의견으로 농산물로 제사하고 아벨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흘려 제사하였던 것이다. (창4장1~4절) 이 제도가 모세 때까지 전해온 바 되었고 (창8장20~22절, 12장7절, 15장9절) 모세 때부터 하나님의 완전한 규례의 제도를 세우셨으니 성문화가 되어 모세로 말미암아 삼차의 칠개절기를 기록하여 장차 있을 그리스도를 증거하신 것이다. (히3장5절) 모세가 지상의 성막을 건축할 때 장차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실 것을 보고 그대로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것은 그 당시 있는 것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우실 참 장막을 계시로 보이사 그대로 지으라고 하신 것이다. (히8장2,5절, 9장11~12절,24절, 10장1절 비교)


■ 생명과와 그룹천사


지상성소를 연구하게 되면 둘째 휘장 뒤에 지성소 (至聖所)가 있는데 그 안에 법궤가 있고 법궤의 양편에 그룹천사가 있다. 기록된 바, 
[출25장18~21절]「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하였다. 
그러면 법궤 위 속죄소 양편에 두 그룹 천사를 세우신 뜻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영생에 들어가는 생명과가 있기 때문이다. 즉 십계명은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을 생명과 대신에 주신 것이다. 그런고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네가 영생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19장16~17절) 하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단 죄로 인하여 잃어 버린 생명과는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형을 입기 전에는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생명과 대신에 십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 십계명 역시 죄인의 몸으로는 받을 수 없는고로 속죄제물의 희생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후에 십계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만일에 죄인의 몸으로 법궤 곁에 가까이 가거나 부정한 손으로 법궤를 만지면 죽음을 당한 것이다.(레10장1~2절, 민18장3절, 삼상6장19절, 삼하6장6~7절 비교) 이는 하늘 생명과 나무를 지키던 두 그룹 천사가 화염검을 가졌던 것과 같이 법궤를 지키는 두 그룹 천사도 화염검을 가지고 법궤를 지키기 때문이다. 즉 하늘의 생명과 나무를 지켰다는 말씀은 장차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세워질 참 장막 안의 법궤를 지키는 것을 표상한 것이다. (차3장22~24절, 출25장16~22절,40절) 기록된 바, 
[계11장19절]「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하였다. 
그런고로 대제사장이라도 지성소에 한번 들어가려면 속죄제물의 거룩한 피로 정결함을 받은 후에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였던 것이다.(레16장1~34절, 히9장18~28절)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라 모세 때부터 행하여 내려오던 모형적 예식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 것이니 짐승의 피로 정결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 곧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모든 인류의 죄값으로 흘리셨으니 누구든지 그 피를 힘입어서만이 지성소에 들어가 십계명 (생명과) 을 받게 됨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히10장19~20절,6장19~20절, 롬3장22~25절, 8장3~4절 비교) 이 세상에서 아무리 의인이라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지 않고는 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 (행4장12절,요6장48~57절, 히10장19~20절 비교) 그런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각가지 절기를 지켜 십계명의 의의를 충만케 할 것이다. 절기가 없이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은 것은 옛날 구약시대나 오늘날 신약시대나 절기로써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는 것이다. 그런고로 기록한 말씀에「내 율례로 주며 내 규례를 보였으니 사람이 만일 행하면 반드시 그로 인하여 살리라」(겔20장11절, 18장9절, 레18장5절) 하신 것이다. 
지상 성소에서 행하던 예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에서 행하게 된 것이다. 지상 성소에서 모형적으로 행한 일은 당연히 하늘 성소에서 집행될 것이다. 만일에 절기가 폐한 것이라면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히8장3절, 사33장20절) 
혹은 말하기를 절기와 십계명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구속의 경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십계명이 있음으로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이며 성전이 있으므로 절기가 필요한 것이다.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모든 절기의 율례와 규례는 하나님의 첫째가는 계명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세상의 많은 신들 중에 어느 신에게 숭배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고 섬기게 되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왕 여로보암이 백성들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할 때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며 (왕상12장 25~33절) 히스기야왕과 요시야왕은 여호와의 절기를 깨닫고 지키게 됨으로 우상과 모든 산당과 신접한 자까지 다 멸하였던 것이다. (대하30장1~5절, 31장1~2절, 왕하23장1~4절, 21~24절) 요시야왕도 여호와의 절기를 깨닫기 전에는 자기 조부 므낫세가 세운 산당과 우상들을 섬겼던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면 자연히 우상을 섬기게 되는 법이다.

 

제5장 모세와 예수님


모세와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탄생하실 때로부터 같은 경험을 당하셨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시기를 잘 알고 있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기한을 사단은 먼저 알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모세가 탄생할 그 때를 짐작하고 바로왕의 마음을 충동시켜 히브리 백성들이 남자를 낳으면 다 죽이게 하던 그때에 모세가 탄생되어 죽임을 당할뻔 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의 왕궁으로 피난되었던 것이며(출1장15~22절, 2장1~10절) 
예수님께서도 탄생하실 때에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남자는 두 살 아래는 다 죽이게 하였으나 (마2장 16절) 모세가 바로의 궁전 안으로 피난하였던 것같이 예수님께서도 애굽으로 피난하시었다.(마2장 14절, 출2장 5~10절) 그런고로 사단이 아무리 날뛴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목적은 변개할 수 없는 것이다. 
기록된 바, 
[사14장 24, 27절]「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였은 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 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저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워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신18장 15~19)하신 말씀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행3장 22~24절) 
그런고로 모세의 행적은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일의 거울이 되나니 모세가 백성들과 더불어 유월절을 행하고 그날 밤으로 백성들을 거느리고 애굽을 떠나 홍해 바다까지 가는 순간에 당한 고생은 장차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시고 그날 밤부터 십자가에서 육신이 운명하시는 시간까지의 고난 받으실 것을 표상한 것이요, 모세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홍해 바다에 들어간 것은 예수께서 무덤속에 들어가실 것을 표상한 것이요, 바다에서 상륙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표상한 것이니 지금 우리들이 받고 있는 침례로 그 뜻을 보이시고 있다.(고전10장 1~4절, 롬6장 3~7절, 벧전3장 21절 참고) 
그리고 그후 성력 3월 초일일에 시내산에 올라간 일이 있었으니 그날이 홍해 바다를 건넌 후 40일째 되는 날인데(출19장 1~7절) 예수께서도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에 승천하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홍해 바다를 건넌 후 50일째 되는 날에 십계명을 받으로 시내산에 올라갔으니 이 날을 곧 오순절을 정하신 바 예수께서도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에 첫번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므로 하나님께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 주신 것이다. (히9장 11~12절, 6장 19~20절, 10장 19~20절, 행1장 3~9절, 2장 1~4절, 출14장 29~31절, 24장 12~16절 참고)


■ 예수,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문제


그런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 받은 것은 장차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행2장 33절) 그러나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 순간에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므로 그 십계명을 깨뜨린 바와 같이 예수께서도 사도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은 교회가 타락되어 태양신의 날을 지키게 됨으로 그 성령은 다시 거두신 바 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줄기 빛으로 오늘날까지 복음사업이 유지해 내려왔던 것이다. 기록한 바, 
「그 아들에게는 한 지파를 주어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니」(왕상11장 36절)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후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40일만에 받아가지고 내려왔으니 이 날이 곧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인 바 예수께서도 기원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 10일에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심으로 진리의 문이 열려 종교개혁자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침례와 안식일은 버릴 수 없는 진리이다. 그리고 삼차의 칠개절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모세의 행적을 기억하게 하심으로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일과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일까지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혹은 생각하기를 예수께서 지성소에 한번 들어가시면 재림하시는 날까지 지성소에만 항상 계시는 줄 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상 성소에도 백성들을 대표하여 중보하는 대제사장이 있는데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보 사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백성이 없을 때에는 중보 사업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이 없을 때에는 중보 사업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서 안식일 교회에서 말한 다니엘 8장11절의 예언과 같이 작은 뿔이 하나님의 교회를 없애 버린 것은 곧 다니엘 8장11절의 말과 같이「그 성소를 헐었으며」한 그 예언을 성취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 8장9절의 작은 뿔의 세력으로 하늘 성소는 헐린 바 됨으로 대제사장 예수님의 중보 사업은 다니엘 8장 13~14절의 2,300주야의 예언 기간이 마치는 날까지 중보 사업은 중단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순절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지만 교회가 파괴됨으로 중보 사업이 중단되었다가 예언의 기간이 됨으로 다시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중보 사업을 시작하신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해서 늘 지성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지상에 있는 백성들과 교통하는 절기와 안식일의 규례를 따라 중보하시는 것이다. 그외에는 항상 하나님 보좌 곁에 좌정해 계신다. (히8장1절, 12장2절, 행7장55~56절, 엡1장20절 비교) 
하늘 지성소라해서 하나님께서 항상 계시는 보좌가 아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보좌와 속죄사업하는 증거 장막과는 별도로 있다. (계8장3~4절, 11장19절, 15장5절 비교) 하늘 지성소는 세상법정과 같은 것이다. 재판소에는 판사 검사가 있는 동시에 변호사가 있는 것 같이 하늘 지성소에도 만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위한 변호사인 예수님이 중보 사업을 하시나 (요일2장1절) 평시에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예수께서 지성소 문을 닫고 나오신다는 뜻을 중보 사업을 마치신다는 뜻이다.


■ 예수, 하늘 지성소에 처음 들어가신 날

 

안식일 교회는 말하기를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그 당시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지 않고 바깥 성소에 계시다가 기원 1844년에 비로소 하늘 지성소에 첫번 들어가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록한 말씀에 
[히9장12절]「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히 속죄함을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하였으며 또는 
[히10장12절]「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하셨으니 그 당시 이미 지성소에 들어가 계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물이 또 증거할 수 있으니「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시고」하셨으니 이 제물은 대속죄일의 제물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염소는 백성들의 속죄제물이요 송아지는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권속을 위하여 드리는 속죄제물이다. (레16장1~34절) 앞 장막 곧 바깥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 제물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지 않고는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실 수 없는 것이다. 기록한 바, 
[행2장33절]「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허락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으니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이라」하였다. 
오순절에 내려주신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증거이다. 어느모로 보던지 그 당시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록한 말씀에 
[히10장19~20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시니라」하였다. 
「휘장은 곧 그 육체시니라」하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리스도의 육체로 말미암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던 것이다. (마27장50~51절) 그런고로 히브리서에 기록된 휘장은 지성소에 가리운 지성소 휘장이 분명한 것이다. (히10장19~20절, 공동번역 참조) 그런고로 지상 성소에 관한 문제를 연구함으로 하늘 성소의 중요한 문제를 밝힐 수가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시로 본 하늘성소는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하늘 성소를 보이신 것이다. 그런고로 지상의 성소 예식을 봄으로 예수께서 행하시는 하늘 성소를 알게 되는 것이며 또한 앞에 될 일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알게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히3장5~6절]「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여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였고 그리스도는 그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그의 집이라」하였다.


■ 아브라함과 장래일의 예언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역사 중에도 여기에 대한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기록한 바, 
[갈4장23~24절]「계집종에게서 낳은 자는 육체를 따라 난 자요 자유하는 여인에게서 난 자는 허락으로 말미암아 난 자라 이것은 비유니 이 두 여인은 곧 두 언약이라」하였다.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여종 하갈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과 자유하는 여인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이 있으니, 두 여인은 두 언약이라고 하였는 바 하갈은 시내산에서 받은 지상 성소와 그 언약을 표상한 것이요, 자유하는 여인 사라는 하늘 성소와 새 언약을 표상하였는데 (갈4장25~26절, 히8장5절, 9장15절 참고) 여종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 같이 하나님의 종 모세로 말미암아 시내산에서 첫 언약을 받아 지상 성소를 세운 것이며 (히9장1~4절) 자유하는 여인 사라의 몸에서 하락의 자손 이삭을 낳은 것같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 곧 둘째언약을 받아 하늘 성소를 세우게 되었으니 (히8장7~8절) 이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있을 것을 예언으로 보이신 것이다. (롬9장7~9절) 
아브라함의 허락의 자손 이삭이 탄생하기 전, 14년 전에 여종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이 났으니 이스마엘은 이삭이 나기 전까지 장자의 명분을 받아왔으나 허락의 자손 이삭이 탄생한 후로는 장자의 기업을 같이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이 모든 역사가 다 장래일의 예언이 되었으니 곧 모세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갈3장16절, 4장25절) 그런고로 예수님 자신도 당신은 허락의 자손 이삭이라는 것을 밝혀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요8장56절]「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창18장10절 비교) 이 말씀은 곧 당신이 허락으로 말미암은 자손이라는 것을 밝혀 드러내신 것이다. 이삭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상하였음으로 이삭을 허락의 자손이라고 하신 동시에 예수님을 허락의 자손이라고 예언하였다. 곧 아브라함의 허락의 자손은 하나님의 허락의 자손으로 표상된 것이다. (행3장25~26절, 롬9장7~9절 비교)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할 때 양으로 대신 제물을 삼게 하신 것은 장차 하나님의 독생자를 참 제물로 바치시기까지 짐승을 잡아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삼차의 칠개절기를 정하여 대대로 지켜 내려올 것을 표상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모리아산은 예루살렘 성터가 된 것이다. (대하3장1절, 창22장1~2절) 이곳에서 이삭 대신 양으로 제물을 삼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독생자 이삭으로 표시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참 제물이 되시기까지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을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이스마엘은 모세로 말미암은 지상 성소와 그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요,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늘 성전과 그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행적을 살펴 연구함으로 우리와 예수님과 연결할 수 있는 진리와 장차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모든 문제와 예수 재림하실 기일까지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제6장 약속의 자손과 남은 백성


성경에는 육신의 자손과 약속의 자손이 있다. 기록된 바, 
[롬9장 7~13절]「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약속의 자손이라는 뜻은 이삭이나 야곱이나 출생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셨다는 뜻이다. 
이 약속에 대한 문제를 대강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85세나 되는 노인이지만 아들이 없어 근심 중에 있었다. 그래서 본처인 사라가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후처로 주었는데 그 하갈의 몸에서 하나님의 약속없이 이스마엘을 낳았다.(창16장 1~16절)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약속하지 않은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14년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창17장 21절]「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하시고 그 약속대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던 것이다.(창21장 1~4절) 
사도 바울은 이런 역사를 들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장차 있을 예언으로 해석하였다.(갈4장 21, 31절) 
그런고로 출생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한 사람들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였다.(롬9장 7절, 13절, 갈4장 28~31절) 그리고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태중에 쌍태가 들어 서로 싸움으로 산모가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어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대답하시기를 
[창25장 23절]「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 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하시었다. 두 민족이라 함은 야곱과 에서에 대한 말씀인데 두 사람이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시길「큰 자는 어린 자를(야곱) 섬기리라」고 분명하게 약속한 그 말씀이 이루어진 야곱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마지막 교회도 하나님에게 대한 육신의 자손이 있고 약속의 자손이 있는데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의 예언이 있으면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고 만일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약속하지 않았으면 현재 큰 부흥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구원받지 못할 육신의 자손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마지막 교회에 대해 예언하고 또 신약의 사도들이 예언해 놓았으면 그 예언이 성취되어 있는 교회가 바로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혹은 생각하기를 위에 말한 예언의 시대는 이미 다 지나간 것으로 해석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도 시대에 대한 예언은 사도 시대에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교회에 대한 예언이 있을 때에는 그 예언대로 마지막에 예언이 성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마지막에 대한 예언들이 신·구약 성경을 통해 더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동방에서 한 선지자를 택할 것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사46장 11절]「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 해돋는 곳(동방)에서 마지막 인치는 천사가 올라올 것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7장 2~3절]「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 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하였다. 이와 같이 구약으로부터 신약의 연결적으로 예언해 놓은 것이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는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고 내려왔지만 최후 마지막인 오늘날에 와서는 약속의 자손이 되어야 기업을 받게될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가 되는 것이다.(롬9장 7~13절,갈4장 28~31절 참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문제는 참으로 귀한 문제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백성은 참으로 귀중한 백성이다.


■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구원받을 남은 자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10장 20~23절]「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 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하였다. 
위에 있는 예언의 말씀이 어느 때 될 예언이며 이 예언과 연결되어 있는 성경 구절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이라고 기록하였다. 
[롬9장 27~28절]「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하였다. 이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연결된 말씀이다. 
과연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세계에 그 수가 바다 모래같이 많이 있다. 그러나 택하심을 받은 약속의 자손 즉 마지막 살아남아 변형을 입고 승천할 성도들은 오직 14만4천 성도밖에 안되는 것이다.(계7장 2~4절)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하신 말씀과 약속의 자손과 연결해서 연구해보면 오늘날 전세계에 바다 모래 같은 많은 교회가 다 구원받지 못하고「남은 자」곧 약속의 자손만이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옛날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께 송사하기를 
[롬11장 3~5절]「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하였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 마지막 남은 자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12장 17절]「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하였다. 
로마서9장 27절의 「남은 자」나 로마서 11장5절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나 다같은 예언으로써 곧 약속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자의 남은 자손은 곧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자손이라는 말씀이다. 어느 때든지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고 그 예언이 성취되는 그 시대 사람이 약속의 자손이 되는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기록된 바, 
[갈4장 28~29절]「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하였으니 요한계시록 12장17절의 여자의 남은 자손도 약속하신 약속의 자손이 되어있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하였고, 약속없이 낳은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을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한 것이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세워진 교회의 사람들이 성령을 따라 난 자가 되고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 택한 백성에 대하여


혹은 생각하기를「약속의 자손」이다「은혜로 택하심을 받았다」하였으니 애써가며 노력하지 않아도 택하였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택하지 않았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 아니냐 하고 시험할 것이다. 그러나 택한 백성이라 해서 전부 택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중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택한 백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한 분명히 택한 백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그러나 경솔하게 내가 택함을 받았나 안받았나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기록된 바, 
[신6장 16절]「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하였으니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택함에 대해서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사 이삭을 낳았고, 야곱을 택하사 이스라엘 12지파를 낳은 것같이 마지막에도 암행으로 오시는 다윗을 택하사 마지막 산 성도 14만4천을 구성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택함을 받았나 안받았나 시험하기보다는 먼저 진리를 연구하고 마지막 산 성도들의 사명에 들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이며 마지막 선지자의 가르침을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힘쓰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다. 
기록된 바「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장24절) 또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 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장 6절) 또는「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장 12절) 하시었다. 침입이라는 뜻은 힘써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약속은 선지자를 택해 약속하였고 선지자는 백성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면 인도받는 사람들은 힘써 들어가기를 노력해야 될 것이다.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은 약속의 자손으로서 산 자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약속의 자손을 산 자라고 하셨다. 말씀 하시길 
[마22장 32절]「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하셨다. 이 말씀은 약속으로 택한 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다 미리 택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 내실 때에 약속하시기를 
[창12장 1~3절]「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하셨고 이삭에 대해서는 
[창17장 21절]「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하셨고 야곱에 대해서는 
[창25장 23절]「큰 자는 어린 자(야곱)을 섬기리라」하시고 미리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산 자라고 하신 동시에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에 들어오는 14만4천 성도들이 산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지막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동시에 14만4천 성도들도 요한계시록 7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제7장 14만4천 숫자에 대하여


신·구약 성경에는 날짜 풀이에 대해서는 1일을 1년으로 혹은 1일을 천년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민14장 34절, 겔4장 5~6절, 벧후3장 8절 참고) 인원수에 대하여서는 1인이 10인이 된다든가 1인이 천년이 된다든가 하는 비결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경학자들이 거의 다 본문의 숫자대로 14만4천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 많은 교회들의 목사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교인 수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다르게 해석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성경으로는 답이 안나오기 때문에 사회적 지식을 가지고 억지로 풀이하여 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 어떤이들은 생각하다 못해 14만4천은 육신적 이스라엘 나라 안에서 구원받는 숫자라고 핑계대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도 모르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 사람과 절대 구별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과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 버렸음으로(엡2장 12~18절)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기록된 바, 
[갈3장 27~28절]「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하였으며 또는 
[롬10장 12절]「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하였으며 또는 
[고전12장 13절]「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하였으며 또는 
[골3장 11절]「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하시었다. 
이렇게 여러 곳에 명백하게 증거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대인의 구원이 별다르게 있다 하는 것은 구속의 경륜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십자가 이후에는 유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이 따로 구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14만4천에 대해서 기록한 바, 
[계7장 4절]「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14만4천이니」하였고 또는 
[계14장 3절]「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만4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자가 없더라」하였다. 공동번역에는 「14만4천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즉 다시 말하자면 14만4천명 뿐이다라는 뜻이다.「14만4천 밖에는」없다「14만4천인 외에는」없다 하였으니, 14만4천인 뿐이다라는 뜻이다. 
요한계시록7장 1~4절과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을 대조해서 연구해 보시면 분명하게 답변이 나오고 있다.

 

제8장 최후의 재앙과 심판


[마24장 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하였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살전5장 1~3절]「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하였으며 사도 베드로는 이 때를 두고 예언하기를 
[벧후3장 6~7절]「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 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3장 10~13절]「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에 불에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마지막 재앙 내릴 때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16장 17~21절]「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하였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습1장 14~18절]「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찌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하였다. 
[말4장 1~3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의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다. 
위에 기록한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은 모두가 다 세상 종말에 관한 예언으로 되어있다. 오늘날 현 세대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보도에 의하면 단추만 누르면 세계 전멸이라는 기사도 있고(1977년 10월 22일 경남 매일신문에서) 또 1976년 3월 12일 국제신보에는 핵전쟁 대비로 미국의 워싱턴 주변에 지하도시 97개소를 개발해 가지고 있다고 보도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제 세상은 막다른 골목에서 진퇴양난의 정신을 수습치 못하고 있는 절망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경고의 기별이 올 때에는 구원의 기별도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기록한 바, 
[렘4장 5~6절]「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하였다. 또 기록한 바, 
[습2장 1~3절]「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러할찌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하였다. 
이러한 즈음에 시급한 것은 구원의 기별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세계 전쟁으로 지구의 종말을 마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구의 파멸이 오든 간에 이 때를 당해 재앙을 면할 수 있는 예언서들이 있으니 여기에 대한 성경절들을 연구해 보기로 하자. 
성경 속에는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이 있으니 누구든지 예언을 절대 적으로 믿고 행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게 되어 있다. 만일 구원의 기별을 믿지 않고 자기 꾀로 구원받기 위하여 재산을 허비하며 지하실을 판다든가(Rocket) 별 세계로 간다든가 조용한 나라로 피난을 간다든가 원자력 잠수함을 타고 북극 얼음산 밑으로 들어간다든가 하는 따위는 잠시 위기를 모면할 따름이지 영원한 생명은 구원하지 못한다는 선지자의 기록이 있다. 
[습1장 18절]「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하였고 아모스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암9장 2~4절]「너희가 파고 음부(지하실)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육하게 할 것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들의 수단과 방법을 쓰는 대신에 하나님의 지도를 따라 성경의 예언대로 구원의 방법을 연구하고 그대로 따라가야 할 시대가 왔다. 
예언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옛적에 거울로 종말을 보여주신 기사가 있으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출12장 12~14절]「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찌니라」하였다. 
혹은 유월절하면 양잡고 제사드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유월절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유월(逾越)이라는 말은 넘어간다는 말인데 무엇이 넘어가느냐 하면 재앙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애굽에 내린 재앙은 거울이 되고 실지로는 최후에 재앙을 면하라는 뜻으로 보여주시고 남겨두신 것이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11장 28절에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출애굽 이후에도 기원전 586년경에 유대 나라가 바벨론 나라의 침략을 받아 망하게 되고 예루살렘이 황폐할 무렵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대 나라가 망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고 선포하였다. 
[렘11장 1~4절]「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쫓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글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애굽에서 이끌어 내던 날은 유월절이다)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예레미야는 이미 증거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래 듣지 아니하므로 바벨론 나라의 침략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다시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렘116장 10~11절]「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너의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하였으며 또는 
[렘44장 23절]「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하였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전세계가 멸망하게 된 것은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이라고 경고하였다. 
[사23장 3~5절]「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하였다. 
영원한 언약은 예수님이 세우신 새 언약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제9장 유월절의 신비


[눅22장 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셨고 또 
[히13장 20절]「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약 때에는 구약의 언약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재앙 내림을 면하였으며 신약에는 신약의 새 언약을 순종하는 자에게 재앙이 면해진다고 하였다. 주전 1498년경 출애굽 당시에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표를 삼아 구원받았고 히스기야왕 당시에도 유월절을 지킨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안에서 천사의 도움을 받아 앗수르 나라 침략에서 구원받은 역사가 있었다. 그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하30장 4~10절]「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선히 여기고 드디어 명을 발하여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반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래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보발군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왕의 명을 좇아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유월절을 지키러 오라) 그리하면 저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너희 열조와 너희 형제같이 하지 말라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한고로 여호와께서 멸망에 붙이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니라 그런즉 너희 열조같이 목을 곧게 하지말고 여호와께 귀순하여 영원히 거룩케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유월절 지키러 오면) 너희 형제와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회개하고 유월절을 지키는 자에게는 )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 보발군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사마리아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보발군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더라」하였다.


위에 기록한 말씀을 상세히 설명하자면 오래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고 있던 유대 나라가 이사야 선지자의 권면으로 히스기야왕이 즉위하자 즉시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고(대하29장 1~3절), 주전 729년 성력 2월14일에 유월절 지키기로 작정하고 보발군들을 유다와 사마리아 땅게까지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땅에는 약 250여년의 긴세월 동안 지켜보지 못한 유월절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유월절의 진리는 더욱 알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보발군을 조롱하고 비웃었던 것이다.(대하30장 10절) 
그로부터 3년 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 쌌다가 3년 후에 함락되었으니 때는 주전 721년이요,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왕 호세아의 9년에 조롱하고 비웃던 그 사마리아 땅은 끝이나고 말았다. 수백만의 희생자가 났고 수십만명이 포로로 잡혀갔고 수백만의 백성들은 열방에 흩어져서 유랑민들이 되었던 것이다. 사마리아 땅은 여로보암이 주전 975년경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여호와의 유월절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돌아갔던 그들의 운명은 255년만에 끝장이 나고 말았다. 
[왕하18장 9~12절]「히스기야왕 4년 곧 이스라엘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7년에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3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6년이요 이스라엘왕 호세아의 9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그 이유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하였다. 
그리고 유대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법은 지킨다고 하지만 율법 중에 제일 중요한 유월절을 깨닫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유월절과 하나님의 율례, 법도를 지키게 되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내려왔던 것이다.


히스기야왕도 이사야 선지자의 권면을 받아 왕위에 즉위하자 즉시 유월절을 지키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국가의 안정을 얻고자 함이요, 또한 장차 무서운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전했던 것이다. 과연 그의 믿음과 행함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는 동안에 보호하심을 받아왔고 또 환난의 때에도 보호함을 받았다. 
[왕하19장 30~35절]「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찌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로다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하였다.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다가 멸망한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나라는 결국 종국을 맺고 말았으나 유대 나라는 유월절의 구속의 인치심을 받고 계속 하나님의 보하하심을 받아 주전 586년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유대 나라도 역시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므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70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이 황무하게 되었고 그러한 가운데에도 참 선지자의 말을 따른 자는 다시 본국에 돌아오게 되고 거짓 선지자의 말만 들은 자는 그대로 멸망 받았던 것이다. 
이제 그 당시의 일들을 좀더 자세히 연구해 봄으로써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며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서 행하게 될 것이다.


■ 언약을 저버리므로 바벨론의 포로가 됨


때는 주전 587년경이다. 유대 나라는 하나님의 유월절과 언약을 저버리므로 바벨론 나라의 침략을 받아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은 함락 되고 수백만의 사망자와 수십만의 포로로 잡혀가서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이 차기까지 지루한 포로생활을 지내왔다. 기록된 바, 
[렘44장 22~23절]「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하였다. 그리고 또 기록하였으되 
[왕하24장 14절]「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하였으며 또한 
[왕하25장 8~12절]「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십구년 오월 칠일에 바벨론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 가고 빈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또 기록하기를 
[렘25장 11~14절]「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하였다. 과연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실행한 사람들은 무사히 지내며 때로는 육신의 성공이 있었으며, 끝날에 가서는 귀국하여 성 건축과 성전 수리 등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노력하였다. 
그러나 하나냐와 같은 거짓 선지자의 예언을 믿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멸멸망하고 말았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9장 16절]「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하였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된 자들은 바벨론 나라에 반역하다가 다 멸망당하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믿은 사람들은 참고 기다려 결국 귀국의 영광을 보게 된 것이다.


■ 바벨론에서 해방받아 본국에 귀국함


기원전 537년과 457년 두차례에 걸쳐 귀국한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귀국하여 예루살렘성 건축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건축하며 헌신적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그 후부터 생각하기를 우리가 이방인에게서 침략을 당하고 나라없는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생명의 진리인 거룩한 절기들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오늘과 같은 저주를 받아왔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부터 안식일도 전날 해가 지면 성문을 닫고 지키고, 모든 절기는 모세 율법대로 철저히 지키기로 굳은 결심들을 하면서 예수 초림때까지 지켜 내려왔던 것이다. 기록된 바, 
[느10장  29~31절]「다 그 형제 귀인들을 좇아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혹시 이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찌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하였다. 
위의 말씀은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 나라에서 해방받고 돌아온 유대 민족들이 무너진 시온성을 열심히 중건하며 다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지 않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복받고 살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다. 이로부터 그들은 모세율법 준행하기를 계속해서 예수님때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나친 율법주의가 자기를 구원하시러 오신 구세주를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에도 있지만 더욱 큰 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이었고 그들은 자청해서 피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려 달라고 거침없이 외쳤던 것이다. 
[마27장 25~26절]「백성이 다 대답하되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니라」하였다. 그들이 자청한 죄가 무사히 넘어갈리 만무하다.


■ 예루살렘의 멸망과 열방에 흩어짐


그 후에 주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찌어다」라고 죄를 자청했지만 그 시로 죄의 형을 내리지 아니한 것은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에스겔 선지자로 하신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40년동안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셨던 것이다. 기록된 바, 
[겔4장 6~7절]「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 메고 예언하라」하였다. 
이 예언을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예수 침례받으신 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십만명의 사망자와 9만7천명이 노예로 잡혀갔으며 그외 남은 백성들은 열방에 흩어져서 나라없는 유랑민이 되어 가진 고생과 학대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외 빈곤한 백성 중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농민들은 각 지방에 남아있어 외국의 침략자들의 학대를 받아가며 국토를 지켜 내려왔으며 열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가진 고생을 해 나가면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시온성의 회복을 항상 부르짖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중대한 절기 유월절은 빼놓을 수 없는 절기중의 하나이다.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들이 라고 해서 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뼈대가 있는 정신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시온성을 향하는 마음과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는 사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절대적으로 믿어 왔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될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켜 내려오고 있었다. 
스바냐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습3장 14~20절]「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쁜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대회(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신 이 예언서를 그들은 잊지 않고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마다 유월절 지킬 때마다 시온을 항하여 울기도 하였다. 나라없이 살아오기를 약 1900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도 잃어버린 조국 시온에 대한 꿈은 변함이 없었다. 해마다 닛산월(성력 정월) 14일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나 유월절을 지켰다. 
옛날에는 유월절을 지켰으나 이제는 나라없는 유랑민이라 예루살렘으로 갈 수가 없으니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울며 기도한다. 마치 옛날에 다니엘이 바벨론에 매여 살 때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문 쪽으로 기도한 것 같이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여 절기를 지키면서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기도 한다. 제사장 대신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주례로 하고 양 대신에 무교병과 포도주로 대용하여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 앉으면 주례자는 축도한다.「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 떡과 포도주를 내신 창조주는 복되도다. 우리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열방에 흩어진 백성을 다시 한번 용서하사 시온으로 인도하소서」하면서 옛날에 애굽에서의 유월절의 해방을 되풀이 하며 거룩히 지킨다. 
가족들에게「우리가 지금은 비록 타향에서 살며 유월절을 지켜도 내년에는 시온성에 가서 양을 잡고 자유인이 될찌어다」라고 외친다. 
1900여년 동안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동안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마시며 나그네의 서러움을 달래는 엄숙해지는 유월절을 맞이한다. 1900여년 동안 대를 이어오며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지켜오며 시온성의 회복을 희망해 오던 그들의 꿈은 현재와서 실현되었다. 그들이 실패를 거듭해 가면서도 끈질기게 시온성의 회복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절대적으로 믿고 예언이 성취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까닭이다.


■ 예언을 믿고 고난을 이김


[시102편 12~22절]「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결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하였으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렘50장 4~5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 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던 자들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열방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이 올 것을 확신하고 끈질긴 신앙으로 지켜 나왔던 그들의 소망은 성취되어 현재 이스라엘 나라는 회복 단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쉽게 된 것이 아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할 때 모세로 말미암아 자주 독립을 찾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여 갈 때에 심한 고난이 있었던 것처럼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해방을 받아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무렵에는 유럽 열방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상 최대의 대학살이 있었다. 서기 1933년 1월 30일부터 시작하여 독일이 항복하는 1945년 5월 8일에 끝난「나치」의 6백만 유대인 대학살은 유대인의 역사에 뿐만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2년 동안「나치」사건은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프랑스, 벨지움,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 유럽의 15개국에서 어린이 150만을 포함한 6백만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한다. 여인들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나체로 끌려다녔으며 강제노동과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모습, 가스실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하는 장면들,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대에 달리는 유대인들의 대학살은 옛 야만시대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금세기 초의 일이며 인류 역사의 부끄러운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이 당하게 된 것도 옛 선지자들의 예언 성취라고 하겠다. 그리고 1900여년 전에 빌라도 총독 앞에서 외치기를 
[마27장 25절]「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찌어다」하였던 그들의 함성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치」사건으로 큰 환란당할 것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렘30장 3~7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속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하였다. 
옛날 이스라엘 조상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두려움과 큰 고민으로 밤새도록 하나님께 씨름하고 난 끝에 가서 그 하나님에게 축복받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 현재 이스라엘이 본국으로 옴


그와 같이 열국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조국을 찾게 될 무렵이 되었으니 그들 중에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로 희생을 당하게 하고 언약을 지키는 자들로 나라를 얻게 하여 시온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찬송하게 하신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나라를 회복하였으니 그들의 정신력은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살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는 재산도 수고도 아끼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생명까지라도 바쳐야 내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지나간 역사의 고난을 잊지 않으려고 예루살렘 근처「야드바쉽」이라는 큰 기념 박물관을 세워 놓았다. 이 「야드바쉽」기념박물관은 (나치)유럽에서 죽어간 6백만명의 넋을 달래는 기념박물관이다. 그 안에 진열된 사진들과 기타 유품들은 유대 민족이 세계 열방 중에 흩어져서 당하던 그 학대, 저주, 치사와 모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나라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항상 느끼게 함으로 나라 위한 정신력을 강하게 한다. 
그리고 「아드바쉽」박물관이 자리잡은 「기억의 산」에는 6백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고 각 나무 밑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모자이크로 수놓여져 있다 한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유월절을 열방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해마다 기념해 왔지만 나라를 찾은 후에는 더욱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1964년 3월 30일 국제신보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전 세계 유대인 유월절 맞이, 전 세계의 천백만 유태인들에게는 3월 27일 밤은 특수한 밤이다. 이날 이들은 3천2백년 전에 유태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질곡에서 벗어난 고사를 기념하기 위한 유월절의 시작을 고하는 날이기 때문이다」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약속한 언약을 배반하지 않으므로 1967년 6월 전쟁에 6일만에 대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모세로 말미암아 받은 옛 언약을 그대로 지키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것은 구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요 또 자기들이 죄를 자청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도 언약대로만 살면 육신의 복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영생은 받을 수 없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와 그들의 성공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돌봐 주시며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들의 역사와 성공을 말하며 그들의 시온성의 회복을 설명하고 있는가 하면 거울과 실물에 대한 진리를 찾고자 함이요 현재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와 시온성의 회복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그림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현재와 이 앞에 남아있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온성의 회복을 알고자 하시는 분은 거울에 비추어진 이스라엘 역사를 봄으로 알게 될 것이다.

 

제10장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


성경에 기로한 모든 말씀은 다 장래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일을 알아보자면 거울을 들여다 봄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된 바, 
[롬15장 4절]「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전1장 9~10절「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3장 15절]「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사46장 10절]「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히10장 1절]「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니라」 
[히8장 5절]「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하였다. 
그러므로 옛적부터 이루어진 것은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지나간 역사들이 수차로 되풀이하여 일차 이차 삼차로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그러므로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당한 역사가 신약의 복음시대에 와서 완전 성취될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신약 시대인 사도시대로부터 내려온 역사를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도 시대의 진리는 완전한 진리다. 그러나 사도 시대의 진리가 변경된 시대는 사도들이 다 세상을 떠난 후 즉 주후 100여년 이후부터 일요일 예배주장이 시작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 때를 두고 예언하기를 

[살후2장 3~12절]「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 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하였다. 
이 불법의 활동은 사도시대 말경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장성하여 큰 세력을 잡게 되어 로마 황제 콘스탄틴까지 입교하게 하였고 황제의 권위가 교회를 주장하게 하여 주후 321년에는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까지 내렸으며(교회사 초대편 193페이지 참고) 그리고 유월절은 주후 150년경으로부터 흐려지기 시작하여 325년에 가서는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다. 예루살렘을 중심한 동방 교회는 안식일과 유월절을 변함없이 계속 지켜 내려왔으나 로마를 중심한 서방 교회는 주후 150년경으로부터 안식일은 물론이고 유월절까지 폐지시키고 일요일에 유월절을 지키며 불법의 행동을 해 내려오다가 동방에서 지키는 유월절을 없이 하려고 주후 325년에 「니케아」(Nicaea) 공의회를 열고 5월,6월 두달 동안에 논쟁을 별려 다투어 회의를 했지만 결국 콘스탄틴 황제의 권위로 유월절은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다.(교회사 초대편 121 ~ 123페이지 참고) (요약 기독교회사 49페이지 참고) 

그 후부터는 만일 유월절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이단으로 취급하고 종교 재판의 판결을 받아야 할 것이며 심지어 사형까지 받게 되는 종교 암흑 시대가 되고 말았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순종하는 자들은 자기 가정에서 숨어서 예배드리고 있었지만 결국 발각되어 종교 심문소에 끌려가는 수가 허다하였다. 그들은 집을 옮겨가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오막살이 집으로 전전해 가며 예배드리다가, 차차로 사막으로 나가 지켰지만 그것마저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 그들은 따로 따로 떨어진 집이나 혹은 동굴 속에서 혼자 금욕생활로 나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교회사 초대편 283페이지 참고) 
그들은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존재없는 상태로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빛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종교 암흑세기가 되어 1260년의 긴 세월도 꿈결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암흑세기 동안에 진리를 반대함으로 육신적 승리를 한 자들은 지금 지옥에 감금되고 진리를 위해 육신을 버린 성도들은 지금 하늘에서 수고의 위로와 치하의 환호를 듣고 있다.(참고, 계6장 9~11절) 
그들의 수고는 참으로 장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들의 수고가 오늘날 새 언약의 진리를 받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증인들이 되고 있다. 진리의 용사들이여! 그 힘이 어디서 났는고. 그들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지만 하나님에게는 칭찬을 받았네. 그들의 수고가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도다. 그들은 일찍 수고하고 일찍 잠들었으나 부활의 아침에는 영광의 천사로 나오리라. 
이제는 종교 암흑세기는 지나갔으나 잃어버린 생명의 진리는 어디서 찾아낼꼬.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이 나와서 천주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고 신앙의 자유와 개혁은 하였으나 진리를 찾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장 22절) 하심과 같이 이제는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이제 변경된 진리를 기독교회 역사책에서 하나 하나 찾아 보기로 하자.

 

제11장 교회역사책에서 진리를 밝히자


1958년 10월 20일 발행 
상해천주교 요리중 
윤형중 저 지킬게명편 
십계명 변경설(22페이지) 
「천주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유대인 『필로』의 분류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다가 제5세기에 이르러 성 아우스딩의 분류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더 합리적이므로 차차 이것이 우세하여 그후 천주교회에는 이 『성 아우스딩』의 분류가 일반화 되었다. 이제 두 가지를 비교하여 보자. 이 두가지 분류를 놓고 볼 때 성 아우스딩의 것이 더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하였다. 
  
【하나님의 십계(十戒)의 분류】 
-필로의 분류- 
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二. 너는 무슨 우상이든지 숭배하지 말라 
三. 천주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지 말라 
四.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五. 네 부모를 공경하라 
六. 살인하지 말라 
七. 간음하지 말라 
八. 도적질하지 말라 
九.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거를 말라 
十.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천주교회 십계·아우스딩의 분류】 
 -성 아우스딩의 분류- 
一.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二.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헛맹세를 발치말 것 
三. 주일을 지키고 
四. 부모를 효도하고 공경하고 
五. 사람을 죽이지 말고 
六. 사음을 행치말고 
七. 도적질을 말고 
八. 망녕된 증참을 말고 
九. 남의 아내를 원치말고 
十. 남의 재물을 탐치말라

 

●1957년 7월 1일 발행 교부들의 신앙책에서 밝힐 문제들(93페이지) 
천국에도 사람을 인도하는 중책을 진 교도자는 반드시 그 구령하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빠짐없이 가르치고 진리에 관한 모든 의문을 충분히 해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성경에는 신조 전부다 다 들어 있지도 않고 또 거기에서 신자의 준수세목 전부를 찾아낼 수도 없다. 주일 성수(聖守)의무의 일례를 두고보라 그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는 하나이지마는 성경에서는 일요일 성수에 대한 명백한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요, 일요일은 아니다. 하였으며

 

● 유월절(바스카절) 폐지문제(125~126페이지) 
성「빅톨」교황(재직 189~199)} 때 예수 부활 축일을 소 아세아 각지 교회에서는 유대인의 바스카절 즉 닛산월 14일에 수난정사(受難丁死)를 기념하고 나서 동 16일에 지내고 로마에서는 동월 14일 다음에 드는 주일에 지내었다. 지금처럼 부활축일을 춘분(3월 21일) 다음에 드는 만월(滿月) 후 첫주일에 지내기로 되기는 325년의 니케아(Nic-aea)공의회(公議會)에서 결의된 다음의 일이다. 교황「빅톨」은 카톨릭 의식의 일치와 유대인 절일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소 아세아 모든 주교에게 로마의 지키는 절일에 따르기를 요구하매 모두 이에 복종하였다. 
  
● 안식일과 일요일의 문제(470페이지) 
2.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도 안식일의 계명은 폐지되지 않았다. 예수께서도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주일(일요일)의 제도는 기원 4세기에 천주교 교황이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을 받아 제정한 것이라 라고 하였다. 
  
● 1962년 12월 일 발행책 교회력 김동수(金東銖) 著 (59페이지) 
바스카 즉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절기로 1주간에 지켜오던 교회는 325년 니케아 회의서 폐지되고 말았다. 
이렇게 바스카와 부활절을 한 절기로 1주간에 지켜오게 된 기독교회는 2세기 중엽에 이르러 교회의 정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밖으로 이교사회와 그 문학철학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안으로 신앙고백의 형성직제의 편성(사교사제조제)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력도 꾸며지게 된 것이다. 이 때에 부활절을 지키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스터 논쟁(Easter Controversy)이다. 이 후에 합쳐서 지키던 바스카와 부활절을 둘로 나누게 되었다. 
원래 바스카는 Pascha Stairovimon, Pascha Cenastasimon으로 나누어 전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금요일, 후자는 생명의 기쁨이 넘친 부활주일로 지켰다. 그후 역서문제(유대력·태양력) 등으로 부활절의 논쟁은 325년까지 계속되어 오다가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결정되었다 하였으며 
  
■ 1970년 3월  일 발행책 요약 기독회의사 박광성 저 (39페이지) 
●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역사 
● 유월절과 승천일 오순절 문제 
3. 부 활 제 
(1) 동방 - 유대인의 유월절과 같음(정월 14일) 
(2) 서방 - 주일을 중시, 춘분후 만월 다음에 오는 주일 
(3) 이를 통일하려고 158년 폴리갑이 로마에 가서 타합하려 하였으나 에베소 감독과 이레네오가 반대 
(4)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통일함 
유월절은 폐지하고 일요일에 부활절 지키는 것으로 통일함 
5. 승천일과 오순절 
(1) 부활 후 40일째는 승천일 
(2) 부활 후 50일째는 오순절 
  
(49페이지) 
● 니케아회의 325년 5월, 6월 두달 동안 회의 
제30장 니케아 회의 Nicaea 
1. 소집자    콘스탄틴 황제 
2. 시  일    325년 5월 ~ 6월 
4. 소집동기 
(1) 부활절 지키는 문제로(동방은 유월절, 서방은 주일 중시) 
  
(61페이지) 
● 성탄절의 유래와 시작 
2. 성탄절 12월 25일 
(1) 354년에 로마에서 379년 콘스탄티노풀에서 
(2) 기원은 로마에서 12월에 3대 축제일이 있음 
a. Saturnalia(12~24) 옛날에 사다톤신이 지배할 때 황금 시대 이룸. 이를 기념 
b. Sigillalia 하순 소아에게 인형주어 즐기게 함. 
c. Brumalia동지제 일양(一陽)의 왕복축하 기독교인이 축일을 모색하게 됨 
(탄생절은 354년 로마 태양신교 태양탄생일을 예수 탄생일로 변경하였다.) 
  
■ 1965년 6월 1일 발행 기독교회사 송낙원 저 (144~145페이지) 
【성탄절】성탄절은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감독 리베리오(Liberius) 시대였다. 379년에는 「콘스탄티노풀」시에서 축하하였고 「애굽」과「파레스틴」에 전파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특기하자면 그 풍속이 「로마」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차제(次第)가 이런 것이다. 
「로마」에는 12월말에 들어서면서 연거퍼 삼대 축제일이 있는 것이다.「제일」은 사투르날리아(Satrunaila)라고 하는 것이 있었으니 12일부터 24일까지 지킨 것이다. 석시(昔時) 사다론신이 지배할 때에 황금시대를 이루었는데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사하는 것이다. 이 절기에는 빈부귀천의 차별을 망각하고 환락에 탐(耽) 하는 것이다. 
「제이」는 시길날리아(Sigilaila) 제일(祭日)이 있으니 12월 하순에 있는 것으로 이때에는 소아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게 하는 절기인 것이다.「제삼」은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일양(一陽)의 래복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차일양(此一陽)의 래복이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습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즉 구주 강탄 축하의 시작인 것이다.(144~145P) 
  
성탄절에 대한 신문보도 
● 1970년 12월 8일과 25일 중앙일보기사 
「성탄절은 12월 25일이 아니다 ...... 3~4월에 탄생, 현 성탄절은 농신제 날이다.역사적 고증에 따르면 ...... 예수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의 날짜는 물론 달도 실제와 틀리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사실인즉 예수가 탄생했다는 12월이 사실과 가장 가까운 달도 아니다 ...... 초기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12월 25일이었던 로마의 농신제일을 택해 예수의 탄신을 축하했던 사실에 비롯한다」하였으며, 동월 25일 신문의 기사는 「가톨릭교회는 3세기쯤부터 이 날을 성탄일로 축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탄생한 기록이 엿보이는 신약 성서에도 이 날이 바로 성탄일이라고는 적혀 있지 않다. 12월 25일로 선정된 것은 동지제에서 비롯한다는 설도 있다」하였다. 
이제는 동서양을 무론하고 누구나 다 잘아는 사실이다. 12월25일은 마귀, 태양신 탄생일이지 예수님 탄생일이 아니다. 예수 탄생일은 성력 1월 14일이다. 양력은 3월~4월 경이다. 이것을 알면서 12월 25일에 성탄 축하하는 것은 태양신 마귀에게 축하하는 것이 된다. 
  
(80페이지) 침례하는 것이 원칙이라 하였다. 
【세례식】시세(施洗) 방법은 일반으로 침례하는 것이 원칙이나 침례 대신으로 세 번 물을 붓는 일이 전기에도 약간 있는 것이고 120년경에는 완전히 세례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81페이지) 
【예배】예배의 시기로는 주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120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말엽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 
  
(82페이지) 
【부활절(Pascha)】"Easter" 란 말은 日耳曼족 중에서 나왔다. 그 시일은 동서가 부동하며 동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과 동일 즉 니산월 14일을 지키었고 서방에서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일요일로 정하고 부활한 일을 중시하였다. 유월절의 시일에 해당하는 일요일 즉 춘분절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이를 축하케 되었다. 이로 인하여 동서간에 2회나 이론이 있었고 325년「니케아」대회의 결정으로서 일요일에 축하키로 했다. 
【승천일과 오순절】예수부활 후 제 40일에는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고 제 50일에는 오순절에 대한 성신강림을 기념했다. 
  
(83페이지) 
예배장소는 개인집 셋집에서 
【예배의 장소】개인의 집, 셋집이나 회당이었고 200년 이후로는 교회, 주의 집, 하나님의 집, 기도의 집이라고 불러서 특별한 건물에서 예배를 거행하였다. 
  
■ 1972년 5월 15일 발행 
교  회  사 초대편 
● (121~123페이지) 유월절에 대한 문제들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 중에 첫째되는 문제는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것이었다. 사도 시대로부터 부활절을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동서방 교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시아에서 본 가장 중요한 날짜는 닛산(Nisan) 14일이었는데 이 날은 유월절 어린 양이 잡혀 죽던 날이고 그리고 제4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날이다. 이 유월절 주간에 언제 이날이 오든지간에 그리스도인은 이날 오후 세시까지 금식하고 그리고 감사의 성찬식(Escharist)을 거행하던 습관을 가졌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닛산 14일 다음의 일요일까지 금식을 계속하고 그리고 유월절 성찬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는 그 주간 이날 일요일에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주장에서 왔다. 이리하여 로마에서 흔히 생긴 일은 그 곳을 방문한 손님들 가운데는 로마 지방의 교인보다 몇날 앞서서 금식을 이미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불편을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해 보았다. 155년에 폴리갑(서머나 감독)은 로마교황 아니케터스(Anicetus)와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양편이 다 상대방을 설복시킬 수가 없어서 서로 다르게 그날을 지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라오디게아(Laodicea)에서는 167년에 닛산 14일에 부활절을 지키던 사람들(Quartodeciman)은 이제 그 습관을 버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필연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의 생각에는 이날에 지키는 부활절 축하는 유대인의 유월절의 계속에 불과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키드(Kidd) 박사는 이 사람들은 에비온(Ebion)파의 사람들 곧 유대주의화한 "Quartoderima" 자들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그들을 여러 가지 그룹 가운데서 유일의 이단자들로 치부하였다. 그들과 바로 반대되던 주장은, 참된 축하는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보았다. 

유월절에 대한 쟁론


이 논쟁의 보다 더 중요한 단계는 197년 로마에서 일어났다. 아니케터스보다 훨씬 더 유력하던 로마교황 빅터(Victor)는 모든 혼란을 중지시키고 부활절을 일요일에 지키는 도미닉의 규칙(Dominical Rule)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 가지 회의가 열렸는데 그 결과는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각지에서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다. 빅터는 거기에다 자기의 특권을 행사하여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하였다. 그런데 이 처사는 항의의 폭풍을 일으켰다. 이레니어스(Irenaeus)는 중재자로서 활동하려고 애썼다.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는 자기 편지에서 성 빌립과 성 요한과 그리고 아시아의 그밖의 성자들의 한사람의 권세를 자기가 행사한다고 주장하고 항쟁하기를 자기는 자기 가문에서 감독의 직분을 여덟 번째 가지는 사람이므로 적어도 어느 것이 바른 규칙인지를 안다고 하였다. 빅터는 폴리크라테스의 주장을 좋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기가 내린 처벌을 취소한 듯 하다. 
  
유월절이 4세기에 와서 폐지됨 (123페이지) 
닛산 14일에 부활절을 지키는 사람(Quartoderiman)들이 4세시경에 와서 아주 없어졌다. 
  
●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날 금식함(139페이지) 
그리스도인이 지킨 그날은 예수님이 잡히시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들이다. 「신랑이 잡혀갈 때 그날에 너희들은 금식할 것이다」그 금식은 오후 세시에 끝났다. 또 그밖에도 매년 거룩한 수난 주간에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금식을 행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교회 역사를 살펴 보았다. 과연 이 역사 속에서 사도들이 어떠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교리를 찾아 내야 할 것이며 사도들이 지키고 행한 진리를 찾아 지켜야 할 것이다.

 

제12장 하나님의 비밀


[마13장 10~11절]「제자들이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하시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천국의 비밀을 허락한 사람이 있고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이 지혜있고 명철하다고 비밀을 아는 것도 아니다. 이 비밀을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말미암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야 알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엡1장 7~9절]「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와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 셨으니」하였다. 
새 언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리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기록하기를 
[엡3장 9~11절]「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룬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려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하였으며 또 기록하기를 
[골1장 26~27절]「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하였으며 또 
[골2장 2~3절]「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 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하였다. 만세 전부터 감취어져 있던 비밀을 새 언약으로 약속한 참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해 말세에 나타내신 것이다. 
[고전2장 7~10절]「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비밀)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하였다. 
새 언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성결하게 되면 성령이 임재하시게 되고 성령이 임재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것 곧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기록한 바, 
[요6장 53~5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하시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에서 말씀하시기를 
[눅22장 19~22절]「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었다. 
새 언약의 만찬으로써 주님과 한 몸이 되지 않고는 주님의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면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된 바, 
[고전2장 10~12절]「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비밀)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비밀)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하였다. 
구약 시대에도 성소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절기의 희생의 피로 성결케 함으로 그 성소에 하나님이 계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실 성전이 된 것이다. 
[고전3장 16~17절]「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하였다. 사람은 스스로 거룩하게 할 수 없다. 절기의 희생의 피로써만이 거룩해지는 것이다. 기록한 바, 
[히10장 19~20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하였고 또는 
[계22장 14절]「(어린 양의 피로)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이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하였고 구약 선지자 스가랴는 말세에 늦은 비 성령 내려 주실 약속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슥14장 16~19절]「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하였다. 
위에 말한 비는 성령을 가리킨 것이다. 절기의 희생의 피로 거룩하게 된 사람만이 성령이 거하실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큰 비밀은 암행시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기록된 바, 
[골1장 26~27절]「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하였으며 또는 
[골2장 2~3절]「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하였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하였고 또「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리스도의 비밀은 초림시에도 일반 교인들이 알지 못했지만 마지막 암행시에는 더욱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영접할 사람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요1장 10~13절]「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하였고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마16장 16~17절]「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지막 때에 암행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만 알고 영접하면 큰 복 받는 사람이 된다.


제13장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모로 예언되어 있다. 혹은 하나님으로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혹은 하나님의 종으로 혹은 선지자로도 표현되어 있으므로 보통 연구해서는 정확하게 해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 구약 성경의 예언서와 신약의 성경 예언이 성취된 부분을 연결해서 연구해 보기로 하자. 
[신18장 18절]「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하시었는데  이 예언의 성취가 예수님 이라는 것을 베드로는 분명하게 증거했다. 
[행3장 22~24절]「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하였다. 이와 같이 위의 예언서를 연구해 본다면 예수님도 선지자라는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사42장 1~4절]「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하였는데 그 예언의 성취가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마12장 16~21절]「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리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하였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 하나님의 택한 자로 되어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 예언하기를 
[사61장 1~2절]「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하시었는 바 그 예언의 성취는 누가복음에 연결되어 있다. 
[눅4장 16~21절]「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하셨다. 
이 예언의 말씀도 자세히 연구해보면 예수님이 한 선지자의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지만 다음에 기록된 말씀을 본다면 여호와께서 친히 나타나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사40장 3~11절]「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였는데 이 예언의 성취도 침례 요한과 예수님으로 이루어졌다. 기록된 바, 
[마3장1~3절]「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 하였느니라」한 이 말씀이 곧 이사야 40장 3~11절의 예언과 연결된 말씀이다. 침례 요한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러 오신 분이고 여호와는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으로 오신 것이다. 또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아기로 탄생 하실 것으로도 예언하였다. 
[사7장 14절]「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셨는데 그 예언 성취는 다음과 같다. 
[마1장 18~23절]「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청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하시었다. 그리고 또 예언되어 있기를 
[사9장 6~7절]「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여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하시었다. 
위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임하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예언되어 있으니 참으로 보통 생각으로 연구해서는 정확한 해석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하겠다. 
[요1장 10~13절]「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하였고 
[마16장 16~17절]「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하시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예수를 믿고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다.
[마21장 10~11절]「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16장 13~14절]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눅7장 16절]「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요6장 14절]「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예수님의 제자인 누가나 글로바 같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하였다. 
[눅24장 19절]「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하였다. 예수님은 옛날 아합왕 당시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와 시돈에 속한 사르밧 땅으로 전전하면서 베옷입고 3년동안 예언하던 그때와 같이(왕상17장 1~24절 참고) 3년동안 복음을 증거하시고 예언하시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을 세우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데는 성경 여러 구절들을 종합해서 연구해 가지고 확실한 해석을 하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가 되어 멸망을 받게 된다. 성경에는 예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이 수십군데 기록되어 있다. 구약 성경에서 본다면 아기로 탄생될 예언은 한 두군데 되지만 그 외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교훈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으며 어떤 기록에는 불로 강림하셔서 불로 지구를 소멸 시키는 것같은 예언으로도 되어 있다. 
[사40장 10~11절]「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 하시리로다」하였고 
[미1장 3~4절「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에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하였고 또는 
[말3장 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또는 
[단7장 13~14절]「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또는 
[사66장 15~16절]「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육 당할 자가 많으리니」하였다. 
위의 성경 말씀을 종합해서 연구한다면 초림이나 재림이나 육체로 나타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진리로 교훈하시고 거짓 교회와 불법자 들에게는 말씀으로 심판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최후의 멸망을 선포한 기록도 있지만 그 예언보다는 먼저 암행시에 나타나실 예언이 시급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 초림도 사실은 암행어사로 오신 것이다. 기록된 바, 
[마16장 20절]「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초림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강림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말라기 3장 1절과 4장 5~6절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메시야  강림의 길을 예비한 후에 메시야는 하늘 구름을 타고 천만 천사와 함께 강림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따.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들을 타고 승천하였기 때문이며 메시야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고 기록되어 있고(단7장13~14절)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신다고 (사66장 15~16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록된 바, 
[왕하2장 11절]「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말4장 5~6절]「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하였으니 바리새 교인들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이 생각하기를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강림한 후에 메시야가 하늘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리라고 믿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참 백성을 인도하시고 거짓 교인들을 멸망주시기 위해 암행(비밀)으로 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게 하신 것이다. 바리새 교인들이나 제사장들이 알지 못한 순간에 엘리야나 에시야가 아기로 탄생하셨고 그들이 알지 못한 순간에 자라서 엘리야는 요단강에서 외쳤고 메시야는 홀연히 그들이 모여있는 성전에서 증거하시고 계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침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셨다. 
[마11장 14절]「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하셨으며 
[막9장 13절]「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하시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는 예수께서 육체로 승천하신 장면을 생각하고 육체로 구름을 타고 천만 천사와 함께 강림하시리라 믿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타나시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천지가 진동하며 유황불이 쏟아지는 그 날만을 보게 될 것이니 그때는 이미 멸망이 결정된 후이다. 이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지 못하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은 심판의 불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날이 당하기 전에 신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진리를 찾아 생명을 먼저 받아야 할 때가 왔다. 이제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모든 문제는 성경에 증거되어 있으니 심각하게 연구해 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 예수께서 육체로 다시 오신다면?

 

만일 예수께서 육체로 다시 오신다면 어떠한 모양으로 오실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육체를 입으신다면 여자의 몸을 빌어 아기로 탄생 하셔야 되는 일이지만 그 출생하실 가정이 어떠한 가정이겠느냐 하는 말이다. 
왕궁에서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목사나 성경학자의 가정이겠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가정에서 태어날 것이겠는가? 모두가 아니다. 암행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그렇게 화려하게 오실 수는 없다. 다시 오시게 되면 1900여년 전에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같이 초라한 가정이나 소외양간 같은 집에서 출생하실 것이다. 
그 이유는 초림때에 그렇게 되었고 또 암행으로 오셔서 세상을 심판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고 세상은 그를 발견할 수도 없다. 아무리 명철한 관상자라도, 철학가들이라도, 신학자들이라도, 신학박사라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기록된 바, 
[요1장 10~13절]「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하였고 
[마16장 16~17절]「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하시었다. 그 당시에도 성경박사들이 많이 있었고 율법학사들도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요6장 65절]「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하시었다. 
혹은 말하기를 이적과 기사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겠으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요사이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이적기사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자들을 위하여 성경은 미리 말하고 있다. 
[살후2장 9~12절]「악한 자(거짓 선지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24장 24절]「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하시었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마7장 22~23절]「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하시었다. 
참 교회 안에는 이적이 없지는 않으나 진리가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이적은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보낼 뿐 아니라 택하신 백성들도 빠져 들어가기 쉽다. 
[신13장 1~3절]「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희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하였다. 요한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계13장 13~14절]「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또 기록하였으되 
[계16장 13~14절]「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또 기록되었으되 
[계19장 20절]「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하였다. 
위와 같이 이적을 내세우고 사람을 유혹하는 교회는 거의가 다 거짓 선지자들이다. 요사이는 교회 밖에서도 놀라운 큰 이적들을 행하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군에 있는 농촌 할머니에 지나지 않는 부녀가 얼굴만 쳐다보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실이 있다. 1979년 9월 17일 부산일보 7면에 만병통치 최여인이라고 신문광고에 크게 보도하였다. 
위와 같이 이적기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크게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1900여년 동안 묻혀있던 진리는 다시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처음 세우신 그 주인이 오시기 전에는 다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5장 1~6절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일곱 인으로 봉한 하나님의 비밀책을 아무도 뗄 수 없고 오직 어린 양만이 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암행으로 오시게 됨으로 그 일곱인은 떼어지고 사단에게 밟혔던 초대교회의 진리는 나타나서 구원받을 백성들은 주님에게로 찾아올 것이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다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다.


■ 예수님의 생활과 환경


[사53장1~2절]「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하였다.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 약 7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7백년 후에 오실 예수님의 외모의 모양을 예언하신 것이다. 과연 예수님의 생활과 환경이 그 시대 사람으로서는 좋게 볼 수 없으리만큼 되어 있었다는 것을 성경으로 알 수 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예수님의 생애의 모든 것이 흠이다. 기록된 바, 
[눅11장38절]「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을 때, 숫가락이나 젖가락으로 먹지 않고 더러운 맨손으로 음식 먹는 걱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세리와 창기등 그 당시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람들 뿐이었다. 기록된 바, 
[마11장18~19절]「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하셨고 또는 
[눅15장1~2절]「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마21장31절]「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하시었다. 이러한 이 모든 환경이 예수님의 진리의 영광을 가리워 놓기에 충분했다. 기록한 바, 
[고후4장4절]「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정과 과오를 보지 않고 따라다니며 오직 진리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받게 된 것이다. 기록된 바, 
[고후4장6절]「어디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하였다. 위와 같이 마지막 때에도 똑같이 나타나셔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이 될 것이다.

 

제14장 성삼위일체에 대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성경으로 짝을 찾아보기로 하자. 
[계1장 8절]「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기를 
[계22장 13~16절]「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하시었다. 1장 8절에는 하나님이「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자요 전능한 자라」하시었고 22장 12~13절, 16절을 연결해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소 불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좌정하신 범위는 온 우주 전체에 충만하시어 온 우주 전체라도 좁아서 용납하시기 곤란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상8장 27절]「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하였다. 
[렘23장 24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하시었다. 그러므로 주의 눈은 가리운 곳이 없고 아무리 은밀한 곳에 숨겨도 주의 앞에는 완전히 드러나 있으며 온 우주 전체가 주님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고 잇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지극히 작은 것까지라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특별히 알아야 할것은 하나님은 영으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도 계시며 때로는 길가는 행인으로도 나타나신다. 
[창18장 1~4절, 10절]「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하고 아브라함은 떡을 만들고 좋은 송아지를 잡고 요리를 한 후 버터와 우유를 많이 준비해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니 하나님이 잡수시고 하시는 말씀이「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이 이삭으로 탄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기록된 바, 
[요8장 56절]「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갈3장 16절]「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하셨다. 그리고 
[요4장 24절]「하나님은 영이시니」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성령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예수님으로 태어나기도 하셨다. 
[마1장 18절]「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그리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하셨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라는 뜻이라고 했다. 
[마1장 21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하기를 
[사7장 14절]「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였고 마태는 그 이름의 뜻을 
[마1장 23절]「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하였다. 그런고로 사도 요한이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창조주라고 하였다. 기록된 바, 
[요1장 1~3절]「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는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하였고 
[요1장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빌2장 6~8절]「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였고 또는 
[롬9장 5절]「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하였다. 그리고 또 기록하기를, 
[골1장 16절]「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고 세상 사람으로도 태어나실 수 있고 행인으로나 혹은 걸인으로도 나타나실 수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하등 인간으로 태어나신다고 해서 놀랄 것이 없다.


■ 여호와께서 메시야로 오실 예언


구약성경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여호와께서 친히 세상에 오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말3장 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하셨는 바 이 말씀의 뜻은 여호와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당신의 사자 침례 요한을 먼저 보내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신다는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뜻으로 장차 오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예언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사40장 3절, 10~11절]「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였다. 
이 예언이 예수 초림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참고 마3:1~2, 눅7:24~27)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사54장 13절]「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6장 45~46절]「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말씀하시고 또 
[요14장 7~9절]「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하셨다. 
그런고로 이사야 54장 13절의 예언은 여호와께서 친히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교훈하신다는 말씀이며 예수님의 교훈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사람이 되며 또 하나님을 본 사람이 되는 것이다.「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하였는 바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께 배운 사람마다 예수님에게 올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요6장 46절]「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14장 9절]「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0장 30절]「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위의 말씀들을 참고하신다면 설명이 더 이상 필요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장에도 기록했거니와 거듭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은 
[사7장 14절]「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였는데 그 예언의 성취가 하나님의 성령이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점이다.

 

마태복음 1장 18~26절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기록되었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는데「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였고 또 「임마누엘이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임마누엘" 이나 "예수" 라는 말의 뜻을 살펴보면 성령 하나님이 육체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고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그 아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존칭으로 기록했다. 
[사9장 6절]「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지만 바리새 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비난을 하였던 것이다. 
[요10장 33절]「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하였으니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는 세상에 오실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 라는 뜻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여러번 기록되어 있다. 
[사43장 11절]「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하였으며 
[사45장 21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하였으며 호세아의 글에도 
[호13장 4절]「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 자가 없느니라」하였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였다. 
[행4장 11~12절]「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하였다. 그리고, 
[마1장 21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였으니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라는 이름이다. 그런데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수 초림때나 마지막 때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


구약 당시에는 안식일을 여호와의 안식일 또는 하나님의 안식일이라고 했었다. 
[출31장 12~13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하였고 
[겔20장 12절]「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하였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안식일이 되어 있다. 
[마12장 8절]「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하였다. 구약의 여호와의 안식일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안식일이 되었으니 구약의 여호와가 곧 신약의 예수님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옛날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출34장 25절]「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찌며」하셨다. 이 말씀은 유월절 양의 피를 유교병(누룩 넣은 떡)과 함께 드리지 말라는 말씀인데 유월절 양의 피를 여호와께서 내 희생의 피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바로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셨다. 
신약의 예수님의 피를 구약 성경에 여호와의 희생의 피라고 하셨으니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의 예수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기록된 바, 
[고전5장 7절]「......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창18장 1~10절]「...... 그(여호와)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하셨는데 그 말씀은 여호와께서 친히 이삭으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예언상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 되어 있다. 기록된 바, 
[갈3장 16절]「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하였고 예수님은, 
[요8장 56절]「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뜻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바 기한이 되면 내가 네게로 와서 사라의 몸을 통하여 네(아브라함) 아들로 태어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던 아브라함이 이삭이 탄생될 것을 즐거워하다가 탄생한 이삭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뜻이다. 
[창21장 1~3절]「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도 기록되어 있기를 
[계1장 8절]「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1장 17~18절]「......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계2장 8절]「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계22장 13절]「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22장 16절]「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하였으니 위의 몇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위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깨달았으리라고 생각한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일단 이 세상에 육체를 입으시고 태어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혹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3장 17절]「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하였으며 또는 
[요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였다. 근본 하나님이시라도 이 세상에 아기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완전하게 통달한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빌2장 6~11절]「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는 말씀과 
[롬9장 5절]「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 시니라」라는 말씀을 기록한 자들은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이 명백하다. 혹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으면 하늘에는 안계실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겠으나 이런 질문은 어리석다. 하나님을 우리 육체를 쓰고 있는 사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우주 전체에 충만하신 분이시므로 모든 하늘의 하늘이라도 좁아서 주를 용납치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렘23장 24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하였으며 
[대하6장 18절]「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하였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무한대 공간 안에 있는 수억만의 물체들을 다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게 하고 계시므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 앞에는 숨길 수 없이 완전히 드러나고 있으며 주의 눈은 다 감찰하시고 계시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일부가 인간으로 태어나셨다고 해서 하늘에서 하나님의 본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육체로 수천만인이 태어나셨다 하더라도 근본 본체는 본체대로 계시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발전소에서 발전되는 전기가 수천만 가닥의 전선으로 나뉘어 각 가전에 필요한 대로 전등, 곤로, 모터등으로 사용되어도 근본 발전소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본체는 그대로 좌정해 계신다. 
그리고 우주 전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생각해 보자. 무한한 대공간 안에 잇는 우주 세계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이사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40장 15~18절]「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것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하였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은하계만 하여도 태양이 약 2000억개가 된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으니 대 우주 안에는 천체들이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숫자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하나님 앞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롬11장 33절]「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하였다. 과연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시고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멘-

 

제15장 성령에 대하여


[마1장 18절~21절]「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홍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하실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령은 어떤 분이실까? 
[고전2장 10~16절]「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고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인데 성령을 잘 분간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는 거짓 영도 많이 있으니 이 거짓 영도 먼저 알아야 하겠다. 
[요일4장 1~3절]「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다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일4장 5~6절]「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고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하였고, 
[고전2장 12절]「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하였다. 
또 성경에는 성령이 두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시라고 하였다. 기록된 바 
[고전12장 13절]「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하였고 또 
[엡4장 4절]「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하였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이 있고 예수의 영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고 아들의 영이 있고 성령이 있으니 만일 성삼위가 개체라 한다면 하나님의 영은 무슨 역할을 하며 성령은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그리고 성령은 하나라고 했으니 그 성령은 삼위 중 어느 편에 속한 것인가? 
어떤 사람의 대답을 잠깐 빌린다면 하나님의 영을 아들 예수에게 주시니 예수의 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그렇게 대답한다면 하나님께서 김씨나 박씨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다면 성령이 김씨의 영도 되고 박씨의 영도 될 수 있단 말인가? 잘 생각해 보라! 
이제 역사하시는 성령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롬8장 9절]「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 두가지로 되어 있고 
[행16장 6~7절]「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하였다. 여기서도 성령과 예수의 영 두 가지로 되어있고 
[롬8장 26~27절]「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 하심이니라」 
[롬8장 34절]「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하였다.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 또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이시다 하였으니 성령이나 예수님이나 예수의 영이나 다 같은 말이 아닌가 말이다. 다시 사도 베드로의 기록을 살펴보면, 
[벧전1장 10~11절]「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하였다. 즉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에 감동되어 예언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베드로 후서에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하였다고 되어있다. 
[벧후1장 21절]「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듯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하였다. 그리고 구약 선지자의 기록 중에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사11장 2절]「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위에 강림하시리니」 
[사61장 1절]「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삼하23장 2절]「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육체로 임하셨던 것이다. 
[마1장 18절]「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나더니」 
[빌1장 19절]「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하였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라고 되어 있지 아니한가! 또는 
[갈4장 6절]「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하였고, 
[고후3장 17절]「주는 영이시니......」또는 
[요4장 24절]「하나님은 영이시니......」하였다. 
[벧전4장 14절]「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하였으니 이 영광의 영은 곧 예수님의 영을 일컫는 말이다. 
[요20장 22절]「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하셨으니 성령이 예수님에게서 나오시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요14장 18~20절]「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장 28절]「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하셨다. 
예수님은 승천하셨다가 다른 이름으로 오시는 것을 가리켜 내가 가서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이다. 
[마28장 20절]「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고, 
[요6장 56절]「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14장 16~20절]「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헤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을 너희가 알리라」 
[갈4장 6절]「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그런고로 보혜사도 예수님의 영이시며 성령도 예수님의 영이시다.

 

제16장 초림 예수와 마지막 예수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이 죄악 세상에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영원한 생명의 진리로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새 언약의 표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속죄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새 언약 즉 생명의 진리가 사도들이 죽은 후에 세상 정권을 잡고 있던 로마에 인해 한가지씩 한가지씩 변하기 시작하여 암흑세기 동안에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계13장 6~7절]「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이와 같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생명의 진리인 새 언약을 빼앗아간바 되고 하나님의 양들은 광야와 산중 사막으로 흩어지게 하였다.(단8:11~12) 
예수님이 왜 다시 육체로 오셔야 하는가 하면, 예수 초림때 세워 놓으신 새 언약이 암흑세기 동안에 짓밟혔으므로 이 새 언약 즉 생명의 진리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여러 차례로 종들을 보냈으나 그들이 바로 찾지 못해서 주님이 친히 오셔서 백성과 진리를 찾아내시기 위해 다시 오셔야 한다. 기록한 바, 
[눅18장 8절]「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시었으며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 말씀을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겟느냐」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믿음없는 세상에 주님께서 최후 심판주로 강림하신다면 구원 얻을 백성들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런고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암행으로 오셔서 선지자의 역할을 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진리로 인도하시고 멸망 받을 백성들에게는 친히 나타나셔서 예고의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빼앗겼던 생명의 진리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세상 끝날에 다시 육체로 탄생하여야 한다. 
생명의 진리가 암흑세기 동안에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 잃어 버린 바 되었으므로 육체로 계실 때에 행하신 새 언약을 또 친히 육체로 나타나셔서 실제로 행하시고 또 악인들과 거짓 종교들에게 친히 증거하시게 되므로 핑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 초림시에 친히 나타나시어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로라 하는 자들에게 명백히 증거하신 후에 예고의 심판하신 것 같이 마지막에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모든 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증거하시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요15장 22절]「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이 말씀은 예수 초림 때에만 해당된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도 이 세상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증거하신 후에 최후 심판을 내리시게 될 때 모든 사람이 핑계할 수 없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문제에 대하여 예언하신 선지자들의 예언서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예수 말씀하시기를 
[요10장 16절]「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하셨는 바 한 목자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성도들 외에 마지막 때 있을 양들을 가리키는 바 이 양들도 예수님이 육체로 친히 인도하신다는 말씀이다. 
한 목자에 대하여 에스겔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겔34장 23~24절]「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하였으며 
[겔34장 15절]「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있게 할찌라」이 예언은 분명 마지막 때 육체로 오신 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실 예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록하기를 
[시53장 2~6절]「하늘에서 하나님이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지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하였도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하였다. 이 말씀 역시 오늘날 세상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여 굽어 살피셨으나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하였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 당시의 형편을 먼저 알아야 예언의 뜻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망이 없어 심령으로 죽은 상태였다. 
에스겔 선지자는 주전 575년 경에 바벨론 나라에서 포로생활 도중에 묵시받아 기록한 예언들이다. 기록한 바 
[겔1장 1절]「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하였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소망이 없는 죽은 상태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장차 하나님의 권능으로 바벨론 나라의 문을 열고 그 백성을 끌어 내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예언으로서 
[겔37장 12절]「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하였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나 구약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이 썩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말세인 오늘날에 대한 상태를 보이신 것이며 오늘날 영적 바벨론인 거짓교회에서 새 언약 곧 생명의 진리로 나오게 하신다는 예언이다. 기록한 바, 
[계18장 4절]「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 하신지라」하였다. 
[겔 37장 23~28절]「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리라」하였다.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하였으니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가리킨 말씀인데 마지막 땡에 예수께서 육체로 다시 오셔서 암흑세기 동안에 거짓종교인 영적 바벨론에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진리로 인도하시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 초림때 세워 놓으신 새 언약이 암흑세기 동안에 짓밟혔으므로 이 새 언약 즉 생명의 진리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여러 차례로 종들을 보냈으나 그들이 바로 찾지 못해서 주님이 친히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진리를 찾아내시는 예언을 에스겔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겔34장 5~16절「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자가 없었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기라 되고 모든 짐승들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아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찌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견져 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들을 건져 낼찌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있으며 이스라엘 산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차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자와 강한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하였다. 
위의 이 모든 말씀은 예수께서 암행으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잃어버린 진리와 잃어 버린 양들을 다시 찾아 내신다는 예언이다. 예언상 다윗은 예수님을 가리킨 말씀인데 이는 다윗왕의 일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역사가 장차 예수님의 복음사업이 어떻게 이뤄질 것을 보이신 것이다. 기록한 바 
[겔34장23절]「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종 다윗이라」 
[겔37장25절]「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때는 다윗왕이 죽은지 약 150년 후에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을 빙자하여 예언한 것은 다윗의 이름으로 오실 예수님을 두고 하신 예언이다. 
다윗이 왕위에 올라 지낸 역사는 40년이다. 기록한 바 
[삼하5장 4~5절]「다윗이 30세에 위에 나아가서 40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7년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하였고 예수님께서도 30세에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다고 하였다. 
[눅3장 23절]「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30세쯤 되시니라」하였다. 
예수님은 출생시에도 다윗의 위를 주신다고 하였다. 
[눅1장 32절「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서 다윗의 왕위 역사 40년이 이루어질 것인가? 
예수님은 30세에 침레받으시고 겨우 3년 동안 실지 교훈으로 행하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온 인류의 죄값으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희생되심으로 육신사업이 삼년으로 끝마치셨다. 
40년 역사가 겨우 3년으로 끝났으니 나머지 37년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인가? 
이 37년이 마지막 때에 암행어사로 나타나셔서 37년 복음사업을 행하게 됨으로 40년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다. 
다윗왕의 40년 역사는 예언이 되어 예수님께서도 역시 육체로 오셔서 40년을 채우셔야 완전한 예언 성취가 된다.

 

제17장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리라


[눅21장 27~28절]「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하시었다.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는 좀더 심각히 연구해야 되겠다. 그 이유는 만일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이시라면 그것을 안 믿는 사람은 멸망할 것이요, 만일 그 구름으로 표현했다면 실지 구름으로 믿고 고집하던 사람들은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다. 1,900년전 예수 초림 당시에도 엘리야가 예수님보다 먼저 올 것에 대하여 바리새 교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마17:10~13, 마11:14 비교) 
그리고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회리바람에 싸여서 승천하였다.(왕하2:11) 그래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오리라 한 엘리야가 올리워간 그대로 불수레를 타고 올 것을 믿었기 때문에 오신 엘리야(침례요한)를 영접하지 못하고 비난하다가 멸망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엘리야(요한)는 그들이 불수레를 타고 올 것을 바라보는 그 이전에 엘리사벳의 몸을 통해 애기로 탄생하였다.(눅1:57~66) 불수레 타고 올 것을 믿고 기다리던 악인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으니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 마지막 때에도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된 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나간 역사를 보아서도 소흘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연구해야 하겠습니다. 
「이런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하시었고 또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하시었다. 
일반 기독교인들의 생각에는 구름 타고 최후 심판주로 오시면 지구는 파멸로 들어가고 구원받은 백성과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아니하고 인자가 구름타고 왔을 때에 이런일을 보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또 택하신 백성을 사방에서 모으신다고 기록하였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구름에 대한 문제이다.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오시는지 그것도 생각해야 될 일이 아닌가? 
구름은 지상의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로 상승한다. 수증기가 상승하여 많이 모여 있는 것이 구름이다. 
이 구름이 대기층 안에서만 운집하여 있다가 눈도 되고 비도 되어 하강하는 것이 구름의 변화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디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오시겠는가? 
그러므로 성경 예언상 구름이 무엇인지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히12장 1절]「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하였고 
[유1장 12절]「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하였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이 모두가 구름을 육체가진 사람으로 표상하였다. 육체를 가진 거짓 선지자를 「물 없는 구름」이라고 하였으니 물 있는 구름은 육체를 가진 참 선지자가 아니겠는가? 잠언에도 기록하기를 
[잠25장 14절]「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같으니라」하였다. 요한 계시록에도 
[계10장 1절]「내가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었는데」라는 말씀은 육체를 입었다는 말씀이다. 
구름의 물은 생명수를 표상하기도 한다. 
[슥14장 8절]「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하시었고 
[요 7장 37~39절]「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니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하시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벧후2장 17절]「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하였다. 
물 없는 샘이나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는 허울좋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안개는 비 없는 구름이다.(유1:12) 그리고 수증기로 증발해보지 못한 물들이 있는데 그 물들은 육체를 가진 모든 인류를 표상하였다. 
[계17장 15절]「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하였다. 백성들은 물이라고 하였으니 구름은 무엇이겠는가? 
물이 태양열에 수증기로 증발해서 상승하여 운집한 것이 구름이다. 
그와 같이 육체가진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구름으로 표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시는 것을 구름을 타고 오신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다니엘 선지자도 계시 중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보고 예언하였다. 기록한 바 
[단7장 13~14절]「내가 또 밤 이상중에 보았는데 인자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하시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실지 구름을 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몸을 통해 아기로 탄생하셨다. 
혹은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은 예수재림의 예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재림의 예언이 아니라 초림에 대한 예언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중에「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하였다. 마태나, 누가는 기록하기를 예수 초림하셔서 하나님에게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나라를 받으셨다고 기록하였다. 
[마28장 18절]「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하였고 또, 
[눅22장 29절]「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하였다. 
초림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예언서에 구름타고 오신다고 하였으니 재림 예수가 구름타고 오신다고 한 그예언이 암행시에 육체로 오시는 예수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그리고 또 한가지 변명할 수 없는 것은「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을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4~35)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고 하신 그 기간이 얼마동안 기간을 두고 하신 말씀일까? 
1900년전에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 이 세대가 지나가지 않았는가? 
성경에는  한 세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시90:10) 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는 말씀은 인자가 구름을 타고 와서 천사들과 함께 택하신 백성을 사방에서 모으시는 기간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를 좀더 상세하게 연구하자면 제21장「암행시에 나타나실 그리스도와 다윗왕」이라는 제목에서 연구에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최후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은 구름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최후에 예수강림은 불을 타고 오신다고 하였다. 기록한 바 
[사66장 15~16절]「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 즉 여호와께 살육 당할자가 많으리라」하였고, 사도 바울은, 
[살후1장 7~8절]「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라」하였다. 
[히12장 29절]「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하였다. 
[마24장 30절]「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시고 
[눅17장 22절]「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하시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은 볼 수 있어도 불에 옹위되어 오시는 예수님은 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구름타고 오실 때에는 믿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하시었다. 
[눅18장 8절]「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하시었다. 
공동번역에는 기록되어 있기를「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하시었다. 과연 믿는 사람이 없다면 구원은 누가 받을 것인가? 그러기 때문에 
[마24장 31절]「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하시었다. 그 때에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동서로 흐른다고 하였다. 
[슥14장 7~9절]「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도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하셨고 
[슥13장 1~2절]「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하였으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에서 생수가 솟아난다고 하였으니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 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밖에 또 어디 있겠는가? 예수 초림 당시에도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 생각하기를 장차 엘리야를 보내리라는 예언이 있는 연고로 엘리야가 산채로 하늘에 승천하였으니 엘리야는 반드시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하늘 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애기로 자라나서 그들 앞에 나타나 증거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형편이 되었으니 믿을 수가 없어서 반대하다가 다 멸망하고 말았다. 
[마11장 14절]「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 찐대 오리라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하셨다. 
[막9장 13절]「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하셨다. 
그와 같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하신 그 말씀 그대로 고집하다가 벌써 인자가 구름을 타고(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육체를 입고) 오셔서 택하신 백성들을 모으고 계시는데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연구도 아니하고 하늘 구름만 쳐다 보다가 결국 멸망의 덫에 걸려서 끝을 맺고 말 것이다. 기록한 바 
[전11장 4절]「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하였다. 공동 번역에는 기록되어 있기를「바람이 부는가 불지 않는가를 살피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하고 구름을 쳐다보다가는 거두지를 못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에 말씀과 같이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자기 생명까지도 거두지 못하고 멸망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최후에 심판주로 강림하실 때에는 구름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불에 옹위되어 오신다고 하였다. 
[요12장 47~48절]「사람이 내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 버리고 내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하셨는 바 
[요1장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계19장 11~13절]「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하셨으니 초림하신 예수님도 말씀으로 오셨고 마지막 예수님도 말씀으로 오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위에 기록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가 아니라 백마를 타고 오신다고 하였다. 그러면 백마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기록된 바 
[사31장 3절]「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하였다. 
말들은 육체라 하였으니 예수님이 암행시에 육체를 입고 오실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하늘 군대들이 그를 따르더라고 하였다. 
[계19장 14~15절]「하늘에 있는 군대들이(성도들을 말함)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또 
[계17장 14절]「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하였다. 
[계13장6~7절]「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하였으니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이 그 전에는 성도들을 이기었지만 마지막에는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도 짐승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단8장 9~12절]「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 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제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 하였더라」하였다. 만일 그 기간 동안에 육체로 오신 주님이 계셨더라면 진리를 빼앗기기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진리를 찾으시기 위하여 마지막 암행어사로 오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단도 순순히 물러갈 수 없기 때문에 열방을 일으켜(충동하여) 싸움을 걸게 되었으니 
[시2편 1~9절]「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하였다.


제18장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남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너무 많이 나올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24장 25~27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하시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본다면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해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해도 믿지 말라는 말씀인데 사실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너무나 많이 나와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기록한 바 
[마24장 23~24절]「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도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하시었으니 진리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에 해당이 안된다. 
이미 재림주를 맞이한 마지막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마지막 세상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너무도 많이 나올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만 하여도 거짓 그리스도가 약 15명 이상에 달하고 있다. 전세계를 통한다면 수천명의 거짓 그리스도가 있을 것이다.


■ 번개가 동편에서 나타남


[마24장 27절]「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하신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예수재림이 번개 같이 세계를 비추어 순간에 지구의 멸망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번개는 빛을 말하는 것인데 재림의 빛은 동편에서 시작하여 서편까지 비출 것이다. 
재림의 빛은 동편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며 그리고 재림의 빛은 초림의 빛보다 칠배나 된다고 하였다. 
[사30장 26절]「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하였다. 
예수초림의 빛은 햇빛으로 비교하였다. 기록한 바 
[계12장 1절]「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별의 면류관을 썻더라」하였다. 
해를 입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말씀이다. 기록된 바 
[갈3장 27절]「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초림의 빛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9장 1~2절]「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하였다. 
위의 말씀의 연결은 마태복음 4장 12~16절에 연결되어 초림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 사방과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길에서 큰 빛을 비추어 주셨지만 그 중에 반대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일도 있었다. 
누가복음 4장 16절서부터 30절까지 읽어보시면 큰 빛을 비추어 주시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재림의 빛이 나타날 때에는 초림의 빛은 부끄러워 한다고 하였다. 
[사24장 23절]「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하였다. 그러므로 번개는 생명의 빛인 복음(번개)이 동편인 한국에서 시작하여 전세계에 번개와 같이 삽시간에 전파된다. 1900년 동안 다 못한 것을 37년 안에 다 마치게 될 것을 번개로 표상하였다. 
[시97편 4~6절]「그의 번개가 (복음이)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같이 녹았도다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았도다」하였다. 
그러나 광명을 흑암으로 보는 세상에서 누가 그의 영광을 바로 볼 수 있을까? 기록된 바 
[사5장 20~21절]「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하였으니 누가 이 영광의 빛을 바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영적 눈이 밝아져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아볼 수 있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실 것이다. 기록한 바 
[고후4장 6절]「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하였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장 25~27절만 보실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24장 30~31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24장 27절]「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하신 말씀과 같이 마지막 진리는 동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증거하신 말씀이다. 기록된 바 
[계7장 2~3절]「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하더라」하였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사41장 2절]「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또는 
[사46장 11절]「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하였다. 
동방에 대한 해명은 이책 후편에 『제 35장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이라는 제목에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므로 참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24장 30절]「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과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한 말씀과 
[계18장 1절]「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 
[마24장 31절]「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하였다. 
[눅18장 8절]「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셨다. 또 기록되었으되 
[요7장 27절]「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하였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암행시에 오셨을 때 그 암행시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며 예수님이 어디로 어떻게 오시는지도 모르고 그의 가르치는 진리를 믿는 사람도 적다는 말씀이다. 
다윗이 시편에 기록한 바 
[시14편 2~3절]「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되 하나도 없도다」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친히 육체를 입으시고 암행으로 오셔서 거짓교회의 포로된 백성들을 인도하실 것을 예언으로 보이신 것이다. 
[시14편 7절]「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하였다. 
그러나 초림 때나 마지막 때나 여호와께서 오실 때에는 영광의 빛을 구름(육체)으로 가리웠기 때문에 세상에 계셔도 알아보기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요1장 10~13절]「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하였다 
예수 초림 당시에도 하나님의 백성이로라 한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마지막 암행시에도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하신 말씀대로 주를 믿고 영접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하신 말씀이 암행시가 아니고 최후 심판때에 해당된 말씀이라면 구원받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제19장 멜기세댁의 반차


[시110편 4절]「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아니 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하였으며 
[창14장 18~20절]「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하였고 사도바울은 이 멜기세덱은 후에 오실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히 말해 주고 있다. 
[히5장 8~10절]「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7장 1~4절]「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였다. 
종합해서 연구해 보면 예수께서 떡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생명을 넣어 주시는 새 언약의 제사로 우리와 언약하신 분이시다. 
레위의 반차는 양이나 소로 제사드리는 직분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는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이다. 우리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이대로 중단할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연구해서 찾아내야 할 때가 왔다. 기록된 바 
[히5장 11~14절]「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너희가 아직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때가 되면 장성한 자들이 나올 터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하였다. 
위에 기록한 말씀을 자세히 연구한다면 장차 완전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나와야 하며 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장성한 자들이 나올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 살렘왕 멜기세덱은 주전 1920년 경에 있었던 역사로써 오늘날까지 그 예언의 비밀이 숨겨져 왔던 것이다. 
기록한 말씀과 같이「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너희가 아직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하였으니 사도 시대에는 멜기세덱에 관한 지식은 젖이나 먹은 어린아이 신앙밖에 되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때가오면 멜기세덱과 멜기세덱에 관한 지식이 장성한 성도들이 나올터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 나온다는 말씀이다. 
위의 예언의 말씀과 같이 이제는 때가 되었으므로 누구든지 연구만 하시면 깨달을 수 있다. 
이 멜기세덱에 관한 예언서들을 자세히 연구해 본다면 예수초림때 보다도 마지막 암행시에 오실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 더 큰 것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하였으니 멜기세덱은 살렘왕으로써 이방 사람이니 예언 성취도 진짜 멜기세덱이 이방에서 나와야 하며「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하였으니 예언성취도 아비나 어미도 없는 사람이 진짜 멜기세덱이 될 것이며「족보도 없고」하였으니 예언 성취도 이스라엘 12지파에는 족보가 실려있지 않은 이방 사람이 되어야 진짜 멜기세덱이 될 것이다. 
초림 때 멜기세덱은 유다지파에 족보가 있으신 분이고 또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고 두분 다 구원받은 분이다. 그러나 마지막 멜기세덱은 아비나 어미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치고 아비나 어미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문제는 영적으로 해석해야 될 문제이니 성경에는 구원받지 못한 부모는 부모가 아니라고 하였다. 
[마12장 46~50절]「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구원받지 못한 부모는 부모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멜기세덱은 구원받지 못한 부모밑에서 출생한 이방인이 되어야 예언성취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창14장 18절]「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하였으니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는 제사장이니 이 예언 성취는 예수께서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 떡과 포도주로 우리들에게 복을 빌어 주실 것으로 예언성취되는 것이다. 
옛날 멜기세덱 당시에는 제사장들이 많이 있어도 떡과 포도주로 복을 빈 사람은 멜기세덱 뿐이었으며 신약에 예수님 당시에도 유월절에 양이나 염소나 소로 제사드렸지만 떡과 포도주로 복을 빌어 주신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었다. 
오늘날 현재에 와서도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로 제사드려 생명을 이어받은 교회는 오직 우리 교회 뿐이다. 
그러나 현재는 유월절이 옳다고 여기 저기서 지키고 있지만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과 같은 그들은 우리가 전하는 말을 도적질해 가지고 거짓단체를 꾸민 자들이니 미구에 하나님께서 치실 것이다. 기록된 바 
[렘 23장 30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하였다. 
이 멜기세덱의 반차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복을 빌어 주는 분이 바로 멜기세덱인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멜기세덱은 암행으로 나타나셔서 마귀에게 빼앗겼던 새 언약의 유월절을 다시 찾아 당신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진리를 주시고 원수들에게는 말씀으로 심판하신 후에 사형집행을 내리실 것이다. 기록된 바 
[요15장22절]「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호6장 5절]「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리라」 
[요3장 18절] 「저를 믿는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12장 48절〕「나를 저 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 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계19장 13~16절]「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 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계17장 14절]「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하셨으니 마지막 때에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새 언약의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생명을 주시게 되었다.

 

제20장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남


[시2편 6절]「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하였으며 
[시9편 11절]「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시99편 1~2절]「여호와께서 그룹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시102편 13~16절]「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사18장 7절]「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에 이르리라」 
[시132편 13~14절]「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134편 3절]「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사12장 2~6절]「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 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가 알게 할찌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라 할 것이니라」 
[사61장 3~4절]「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사62장 1~3절]「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24장 23절]「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사51장 16절]「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하였으며 
[사52장 1~10절]「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찌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찌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 버릴찌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찌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찌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들을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30장 19~20절]「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하셨으며 
[사40장 9~11절]「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였다. 
이 모든 예언서들은 새 언약에 관한 예언서들이다. 절기 지키는 시온성에는 여호와께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셨으며 (사33장 20~21절) 신약 성경에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14장 1절]「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히12장 22~24절]「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하였으니 새 율법은 시온산에서 나오고 새 언약의 말씀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사4장 1~4절]「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하라 하리라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사25장 6~9절]「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시온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 하리라」하셨으며 
[시50편 1~5절]「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하셨다. 과연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거룩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제21장 암행시에 나타나실 그리스도와 다윗왕


[계5장 2~5절]「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하였다. 
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은 사도시대 오순절부터 시작한 하나님의 교회가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는 박해와 진리의 박멸과 이단이 들어옴으로 암흑시대를 이루어 약 1260년 동안 생명의 진리가 밟혔으니 진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되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개혁은 했어도 진리는 찾지 못하였고 그 후에 여러 종교개혁자들이 나왔어도 어느 누구도 그 생명의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하신대로 마지막 때에 암행어사로 오시는 다윗의 뿌리 즉 예수님이 초대 교회 신앙인 새 언약을 완전히 회복하실 것을 두고 예언하신 것이다. (참고 계22장 16절)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겔34장 5~26절]「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짐승들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짐승들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아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찌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 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찌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다. 
위의 말씀은 초대교회 이후 진리는 짓밟힘을 당하고 교회는 바알신의 소굴이 됨으로 양들은 산지 사방으로 흩어져서 들짐승의 밥이 되고 모든 산과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어도 찾고 찾는 목자가 없으므로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양의 목자가 되어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것들을 건져내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다윗왕으로 오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겔37장 24~27절]「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하였다. 
이외에도 모든 선지자들이 마지막 다윗이 일어나 초대교회의 잃어버린 생명의 진리를 회복할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호3장 5절]「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 가리라」하였으며, 또는 
[렘23장 3~6절]「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서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하였고, 
[렘30장 7~11절]「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꺽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하였다. 
[시132편 10~18절]「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였으니 변치 아니하실찌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찌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찐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하였으며 또는, 
[사55장 1~7절]「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하였으며 또는, 
[암9장 11~15절]「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저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 거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수원들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였다. 그러나 다윗왕이 돌아오는 곳은 시온성을 택하시고 시온성에 돌아오는 것을 원하였던 것이다. 기록된 바, 
[삼하5장 7~10절]「다윗이 시온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하였으므로 다윗과 시온성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에 나타나실 때에는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기 때문에 다윗의 이름으로 오신다 하면 곧 하나님이 오시는 줄 알아야 한다. 기록된 바, 
[시132편 13~18절]「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내가 이 성의 식표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하였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한 이 말씀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계5장 5~6절]「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이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더라」하였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를 「어린 양」이라고 하였으며,「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하신 말씀을 요한계시록 5장 6절에는 어린 양이 일곱 뿔이 났다고 하였다. 뿔이 났다는 말씀은 심한 진노가 발하신다는 말씀이다.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1900여년 전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시며 세워 놓으신 생명의 진리를, 마귀가 빼앗아 버리고 양들을 다 흩어 버렸으니 그 원수들을 잡아 없애기 위해서는 다윗에게 일곱 뿔이 나야만 한다. 어린 양이 직접 인도하신다는 예언을 에스겔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겔34장 15~16절, 23~24절]「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있게 할찌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다.

 

제22장 시온성에 계시는 육체의 하나님


[사33장 20~22절]「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하셨다. 스바냐 선지자도 
[습3장 14~20절]「시온의 딸아 놀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대회(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다. 
위에 기록한 예언서 중에「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또는「내가 대회(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하신 절기 또는 대회라는 예언의 말씀은 신약의 새 언약의 절기를 두고 예언하신 말씀이다. 기록한 바, 
[히12장 22~25절]「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낮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쫓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하였다. 
구약의 절기는 거울이 되어 실물인 신약의 새 언약의 절기를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새 언약의 시온성에 대해 여러모로 증거해놓았다 
[렘4장 5~6절]「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요」하였으며 
[렘50장 4~5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 버리지 아니할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하였으며 미가 선지자는 시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미4장 1~2절, 6~8절]「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요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하였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시온성으로 오는 자들에게 여호와가 함께 계시며 그들에게「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하심과 같이 절기 지키는 시온성으로 오는 자들에게 생명의 진리로 가르쳐 주실 것이다.

 

제23장 십계명과 의문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에 기록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출24장12절]「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하시었는데 구역성경에는「내가 석판에 기록한 율법, 곧 계명을 주어 백성을 가르치게 하리라」하였다. 율법과 계명이 분리된 말씀이 아니라 율법이자 계명이요 계명이자 언약이라는 말씀이다. 
[출34장28절]「여호와께서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하였다. 십계명을 율법이라고도 하고 언약의 말씀이라고도 하고 신약에 와서는 의문의 율법이라고도 하였다. 기록된 바, 
[롬7장5~7절]「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중에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느니라」하였고 또는 
[고후3장6~7절]「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도」하였으니 십계명이 의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새번역 성경에는「돌비에 새긴 율법조문이 주어졌을 때에도」라고 하였다. 또한 기록한 바 
[엡2장15절]「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였으니」또는 
[히7장16절]「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아 세운 것이 아니요」하였으며, 
[히7장18~19절]「전엣 계명이 연약하여 무익 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찌라」하였고 또는 
[롬3장20~24절]「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외에 (십계명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공로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하였고, 또는 
[갈2장16절]「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하였으며 또는 
[갈3장23~27절]「믿음이 오기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하였다. 
그러므로 의문의 율법은 우리로 죄를 짓게 하고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게됨으로 우리가 살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죄사함을 받고 또 영생을 겸하여 받게하신 것이다. 기록된 바, 
[롬5장20~21절]「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려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하였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옛 율법 아래는 매여 있지 아니하나 새언약 곧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는 매여있다고 자신이 말하고 있다. 기록한 바, 
[고전9장20~21절]「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자 같이 된것은 율법아래 있는자들을 얻고자함이요 율법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자나, 율법없는 자와 같이된것은 율법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다고 기록하였는데 (시19편7~8절, 참고) 왜 율법이 폐했다고 하는가? 하고 질문하실 분이 계실 것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율법은 그 자체는 완전하고 그리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고 거룩하며 의롭고 선한 그 율법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게 대하여는 무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언약 곧 그리스도의 율법인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것이다. 기록된 바, 
[엡1장7~10절]「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다. 
새언약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옛 율법이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새언약을 받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옛언약인 십계명이 그들을 심판하게 된다. 공로없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십계명으로 심판을 받고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법은 에덴동산에서도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 법으로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쫓겨나와 결국 사망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제24장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왜 두었나?


[창2장16~17절]「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실때 아담 하와가 따먹을 것을 하나님이 아셨을까, 모르셨을까? 기록된 바, 
[사46장10절]「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하였다. 
처음부터 종말을 내다 보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셨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셨다고 한다면 아담 하와로 하여금 범죄하게끔 계획 하신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중으로 범죄망을 놓아 뱀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이다. 기록된 바, 
[창3장1~5절]「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중에 뱀이 가장 간교한지라」하시었다.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왕에게 심한 고통을 받았지만 그 고통을 받게하신이도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출9장15~16절]「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참고 롬9장17~18절) 하셨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두신 것은 아담 하와로 따먹고 범죄 하게끔 된것이니 죄가 더한곳에 은혜까 더욱 넘치게 하신 것이다. 아담 하와에게는 선악과가 계명이 된 것이다. 계명이 없는 곳에는 범죄함도 없는 것이다. 기록한 바, 
[롬5장13절]「죄가 율법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 하였느니라」하였다. 

 

■ 법을 세운것은 죄를 많게 하려 하심


그러면 왜 선악과를 두어 아담 하와로 따먹고 범죄하게 하셨는가? 이는 죄에서 구속함을 받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영생이 정해져 있지않고 조건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을 때는 영생이 조건부가 아니요 영생이 완전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기록된 바, 
[계21장4절]「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하시었다. 에덴동산에서나 시내산에서나 법을 세운 것은 그 법에서 죽게 마련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선악과가 법이요 시내산에서는 십계명이 법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법을 세운 것은 죄를 짓게 하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롬5장20~21절]「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곳에 은혜까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 한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함이니라」하였다. 그리고 새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새번역 롬5장20~21절]「말하자면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가 죽음을 가지고 지배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가지고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에서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야 영생이 완전하게 정해진다는 뜻이다. 문제는 예수님의 피가 말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계명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롬7장10~11절]「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하였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기회를 타서 속이는 일을 계속한 자이다. 아담이 없는 기회를 타서 하와를 속이고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고 아담에게 주어 먹게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창3장1~5절 참고)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도 완전 창조가 아니고 시내산에서도 완전한 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나님은 아직까지 완전한 것을 만드시는 창조 사업을 하시는 도중에 있다. 기록된 바, 
[요5장17절]「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하시었다. 이 말씀은 안식일에도 사람을 완전 창조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완전 창조사업은 언제 끝날것인가? 창세기 1장을 연구하면 6일 동안에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하신 그 말씀을 사도바울은 해석하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제25장 안식일과 안식천년


[히4장3~6절]「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하였다.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한 그 안식은 인류역사 6,000년이 끝나는 그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사도 바울은 해석하고 있다. 6일만에 당하는 안식일이나 6년만에 당하는 안식년을 연구해 보면 모두가 다 장래일에 예언이 되어 있는 것만이 사실이다. 
성경의 예언 성취는 1일이 1년으로 예언이 성취되게 하신 일도 있지만 (민14장34절, 겔4장6절 참고) 하루가 천년의 비유도 있다. 
[벧후3장8절]「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하신 말씀도 있다. 칠일제도의 안식일이나 칠년제도의 안식년이 있었으니 예언으로 비추어 볼때 인류역사 6,000년이 지나면 지구의 안식천년이 있게되는 것은 진리로 알게 되는 것이다. (계20장6절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6일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는 말씀은 6천년 동안에 완전한 창조를 마치시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시며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을 보이신 것이다.「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들어 갈자들이 남아 있거니와」하였다. 
그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사도요한은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는 완성품이 되지 못하고 미완성품으로서 완성품을 만드는 모형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왜냐하면 아담 하와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아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전15장44~49절]「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기록한 바, 첫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아담은)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사람 (아담) 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사람 (예수) 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자 (아담) 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자 (예수) 는 저 하늘에 속한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자 (아담) 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자 (예수님) 의 형상을 입으리라」하였다. 
그러므로 아담은 영원히 살수 없는 흙에 속한 자로서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영원히 살수 있는 완성품으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제26장 완성품과 미완성품


[계21장4절]「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하시었다. 그러므로, 완성품이 되었을 때에는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없다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아담도 완성품이 되지 못하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완성품이 되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의 피로 구속 함을 받는 자만 완성품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없이는 완성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아담도 범죄하고 쫓겨났으니 완전한 것이 못되었고 천사도 범죄하고 쫓겨났으니(벧후2장4절) 완전한 것이 못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는 죽음이나 고통이나 슬픔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이상 더 완성품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이 완성품을 만드시는 창조의 과정을 연구해 보면 6일 창조는 예언으로 보여주셨고 6일의 예언이 6천년에 창조 사업을 마치실 것을 보여 주신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천사들이 그대로 완성품이 될 수 없고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그대로 완성품이 될수 없다. 그 이유는 천사는 천사세계에서 지킬법을 그대로 지키면 그대로 있는 것이요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이 그들을 항상 감시하고 있으니 완전한 곳은 못되는 것이다. 법을 세운 것은 완전한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요 완전치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하였다. 기록된 바, 
[딤전1장9절]「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자와 망령된 자」들을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하였다. 
완전한 사람이 아닌 무법한 사람이 사는 곳에 법을 세운것은 그 법에 걸리기 마련이다. 좀더 일찍 걸리느냐 좀 늦게 걸리느냐가 문제이지 어느때든지 결국 걸리는 것만이 사실이다. 
이런 곳에서는 영생하는 완성품이 되어 있지도 않고 될수도 없다. 혹은 질문하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시더라도 쉽게 창조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하시는 분이 있는데 물론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완전 무결한 로봇트도 만드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창조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없고 또 사랑을 할수도 없다.

[창2장21~24절]하나님께서 아담의 아내를 지으실 때에 왜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해와를 만드셨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하고 둘이 한몸이 되었다고 하였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클 것인가 만일 하와도 아담과 같이 흙으로 만들어 부부로 정해 주셨다 하게되면 얼마 안가서 그 사랑은 식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사랑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기록된 바, 
[고전6장16~17절]「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몸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하였다. 
아담의 갈비뼈를 뺄때에 흘리는 피와 아담의 고통은 하와에 대한 사랑이다. 아담의 갈비뼈를 빼지 않고 흙으로 하와를 만드셨다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할수도 없고 둘이 한몸이라고 할수 없다. 
그리고 자식없는 사람이 자식 가지기를 원하고 있지만은 남의 자식은 키우기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자기 살이 아니고 자기 피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녀를 낳게 하신 것도 10개월동안 태중에 넣어 고생하다가 결국 피를 흘려서 낳게 하신 것은 짧은 인생살이지만 그동안 서로 사랑을 잇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주님과 영원히 사랑을 계속하자면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신 것과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우리를 재창조 하심으로「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하심과 같이 6천년의 긴 세월을 거쳐서 죄와 사망속에서 당신의 살과 피로 구원하심으로 완성품을 만들어 영원히 당신 몸과 같이 지칠줄 모르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려고 구속의 경륜을 세우신 것이다.


■ 6일창조가 6천년의 예언


이제 6일창조에 대하여 첫째날서부터 일곱째날까지의 과정을 하루,하루 찾아보기로 하자 
[창1장1~5절] 첫째날에는 빛과 어두움을 만드셨는데 이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장1~5절 참고) 하였고 또는「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장6절) 하시었다. 
육신으로 해석한다면 첫날의 빛은 태양빛으로 해석하겠지마는, 예언으로는 생명의 빛을 두고 하신 말씀인데 이 첫째날의 예언시대는, 아담에서 노아 때까지 1,656년간 예언이다. 그때 빛을 깨닫지 못하여 죄악이 심해서 홍수로 멸망하였다 (창6장5~7절) 
[창1장6~8절] 둘째날에는 물가운데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상,하로 나뉘게 하셨다. 
예언상 물은「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였다 (계17장15절) 해석을 해보면 하늘에 있는 물은 구름인데 구원받을 거룩한 성도들을 표상함이요. 아래의 물은 구원받지 못하는 모든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둘째날의 예언시대는,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352년간 역사로써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서 바벨 탑을 쌓다가 저주로 혼잡 방언을 받아 가지고, 지면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창11장1~9절 참고) 
[창1장9~13절] 세째날에는 물을 한곳으로 모아 바다를 이루시고 드러난 땅에 각 종류의 수목이 나게 하셨다. 예언상 바다물은 전세계 인류라고 이미 해석하였다. 
그리고 각 종류의 수목도 각 인류로 예언되어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눅23장31절) 하시었다. (겔17장19~24절, 20장47~49절 참고) 
세째날의 예언시대는 아브라함에서 모세까지 425년간 역사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의 생애에 사는 동안 각국나라가 생겨났다. 
[창1장14~19절] 네째날에는「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별들을 만드시고 땅에 비취리라 하셨다. 
네째날의 예언시대는 모세에서 예수님까지 1571년간 역사로써 성문화 된, 구약과 신약이 이루어졌다. 구약은 작은 광명이요. 신약은 큰 광명이다. 육신으로 해석한다면 큰 광명은 해요 작은 광명은 달로 해석이 된다. 해와 달을 예언으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다. 
[계12장1절]「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하였는데 해를 입었다는 말을 갈라디아 3장27절「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침례) 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하였다. 즉, 해를 입었다는 말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다는 말이다. 
구약시대에는 밤하늘 달빛 아래서 신약인 태양빛의 반사로 땅에 비취어 거울의 역할을 하여 아침 태양 즉, 그리스도의 빛이 오기를」기다렸던 것이다. 
넷째날에「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워졌다」고 하였는바 이 예언은 모세 때에 와서 율례와 규례와 절기와 안식일 등을 정한 것으로 예언 성취되었다. 
[창1장20~23절] 다섯째날에는 바다에 고기와 공중에 새들을 번성케 하셨다. 이 예언을 육신으로 해석한다면 문자그대로 바다 생물과 공중의 새 종류들로 해석할 수 있으나 예언으로 해석할 때에는, 바다에 대해서 이미 해석한대로 인류사회라고 하였다. 
해석한다면 바다의 임시 주인은 용이다 (마귀) 다니엘7장3절에는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요한계시록 13장1절에는「바다에서」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고 하였는데 그 짐승이 용의 권세를 받아 42개월 즉, 1260일 동안 성도들과 싸워 이게고 모든 족속들을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탄압하였다. 예언상 1일을 1년으로 예언 성취되게 하였다 (민14장34절, 겔4장6절)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교회주권을 잡고 1260년동안 암흑세기를 만들었다. 그리고공중에 새도 마귀를 표상하였다.예수님의 비유에 
[마13장3~4절]「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하였는데 새들이 먹어버렸다는 말을 누가복음에는 마귀가 뺴앗아 간 것으로 되어있다 (눅8장11~12절) 그리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눅8장11절,벧전1장23~24절 비교) 
다섯째날의 예언시대는 예수님 십자가 이후 박해의 시대를 거쳐 1260년 암흑세기가 포함되어 1798년경 블란서 혁명으로 인하여 교황 비우스6세가 혁명군에게 사로잡혀가서 죽은 때까지 예언이다. 
그 기간안에 교회는 예언대로 광야로 도망해서 1260년동안 사막,산중,동굴 등으로 전전 하며 비참한 세월을 보내왔다 (계12장6절, 14절) 
[창1장24~31절] 여섯째날에는, 육축과 모든 짐승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끝시간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다. 이 아담과 하와에 대해 예언으로 해석한다면 아담은 오실 자(예수님)의 표상이라고 하였다 (롬5장14절) 
그리고 첫아담은 땅에서 났고, 마지막 아담은 하늘에서 나셨다고 (고전15장44~49절 참고) 하였으며 요한계시록 22장17절에는 마지막 아담과 하와에 대해 성령과 신부라고 하였다. 
[계22장17절]「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하시었다. 
19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둘째 아담으로 예언되어 있지만 그 예수님이 세상끝에 다시 육체로 나타나셔서 모든 짐승 (이방사람) 들을 인도할 것을 예언으로 보이신 것이다. 
구원받을 이방사람들을「각색 네발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행10장1~16절 또 10장24~29절 비교) 이라 하였다. 이 예언시대는 1798년이후 종교개혁자들이 진리를 찾아 개신교회들을 이루었고 그때부터 마지막 하나님의 교회가 끝나는 때까지다. 
[창2장1~3절] 천지 만물을 다 이루신 끝날 일곱째날에 쉬시며 복을 주어 거룩하게 하시었다. 그러나 이 일곱째날에는「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하신 말씀이 없다. 
그 이유는 예언상으로 마지막 끝이 없는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히4장1~11절]「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또는「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찌니」하였다. 
[수21장44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상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안식으로 주셨고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늘 가나안땅 영원한 안식으로 주셨다. 
이 예언은 이 세상 끝날에서 1,000년 왕국을 거쳐서 영원한 안식세계로 들어가는 예언이다. 
이제 6일창조와 7일 안식세계를 도표로 대강 그려보겠다. 
[6일 창조는 6천년의 예언이다 도표(앞) 참조]

 

■ 하늘에서 쫓겨남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아담의 가족에게 법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의 아담의 가족이 그 법에 걸릴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속의 경륜을 세우시고 구원받을 백성들을 택하셨다고 하였다. 기록된 바, 
[엡1장4절]「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하였으니 이 말씀을 본다면 아담과 해와는 이미 죽게 된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만일 죽지 않을 아담을 만드셨다면 아담 창조 전에 죽을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경륜을 세울 까닭이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아담 창조 전에 구속의 경륜은 세우신 것은 아담이 번죄할 것을 아셨다는 증거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실리도 없고 헛된 수고도 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시다. 기록된 바, 
[사45장18절]「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창조 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된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하였다. 
그리고 택하셨다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것은 이 택하심이 장차 나올 것을 미리 아시고 택하셨다고 하셨는지 아니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사들 중에서 택하셨는지가 문제이다. 
이 두가지 문제는 연구하는데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서 창세 전에 있었던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솔로몬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창세전에 있었던 역사를 보고 기록하기를, 
[잠8장22~31절]「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하였고 솔로몬이 한 솜씨로 기록한 전도서에도 
[전1장9~10절]「이미 있는 일이 후에 다시 이루니리 해 아래는 도무지 새 것이 없느니라.... 우리 전 세상에도 이미 있었느니라」하였으며 욥도 자기가 창세 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욥38장4~21절]「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하였다. 
구역성경에는(옛날 성경에는) 
[욥38장21절]「네가 그 때에 이미 났나니 년수가 많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욥이 아담 창조 전에 이미 났다고 하였으니 욥이 그 때에 어디 있었을까?「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38장7절) 하신 그 천사들 무리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는 성령에 감동되어 두로 왕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하늘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천사로서 하나님의 성산에, 화광이 발하는 보석사이에 왕래하다가 영광이 넘침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범죄하고 쫓겨났다고 하였다.(겔28장11~17절)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에 감동되어 바벨론 왕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하늘에서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는 영광의 지위에 교만이 생겨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기 보좌를 높이고자 하였으며 하나님과 어깨를 비교해 보다가 결국 죄악의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사14장4~15절)고 하였다. 
모든 천사들이 쫓겨났던 그곳이 어디인가? 심각히 연구하면 육체가 사는 곳이 아니고 신의 세계라는 것을 알수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영혼문제로 들어가봐야 하겠다.


 제27장 사람의 영혼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이 영혼문제를 연구함에 있어서 첫째 우리의 영혼이 어디서 왔는가? 둘째 우리의 영혼이 어째서 육체를 쓰고 이 죄악세상에 살고 있는가? 세째 우리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날때 어디로 가는가? 이 세가지 문제는 인류들의 소망을 위하여 꼭 알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문제이다. 
즉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고야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제부터 논쟁의 결정을 이루는 주님의 말씀과 수천년간에 전해 내려오는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창조주의 오묘한 진리를 살펴 보기로 하자. 
[히11장15~16절]「너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하였다. 
누구든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지 않으면 돌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뜻으로「저희가 만일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으려니와」하였다. 인생의 영혼은 반드시 온데가 있고 가는 곳이 있다. 
육신은 비록 이 세상에 났다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지마는 우리 영혼은 어디서 왔든지 온 곳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믿음의 조상들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시 나그네로 지난다고 하였다. 이스라엘 조상 야곱은 애굽왕 바로가 나이를 물어볼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창47장8~9절]「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하였으며 다윗은 기록하기를, 
[시119편54절]「나의 나그네 된 세상에서 당신의 율례가 나의 노래로다」하였으며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다 나온바 전세상을 생각하였고 기록하였다. 
[히11장13~16절]「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 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하였다. 
위에 기록한 모든 믿음의 조상들의 말을 연구해 보면 전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잠시 외국에 와서 나그네 세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본향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못한 것은 죄악의 너울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전세상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끊어지고 만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59장2절]「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게함이니」하였다. 
우리의 영혼이 전세상에서 고귀한 천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지마는 일단 죄의 너울을 쓰고 이 세상으로 왔기때문에 전세상의 상태를 볼수 없도록 죄의 보자기로 신령한 눈을 가리워 하늘 본향의 사물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전세상 상태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이 죄악의 너울을 뚫고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때가 더러있다.


■ 예수님의 영혼과 우리들의 영혼


전세상에 대한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서 첫째 우리 구주의 생활속에서 명확히 설명되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과 육체의 모양이 똑 같으셨다. 예수님은 너무도 우리와 똑 같으셨기 때문에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과 보통 사람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찾아 볼수 없었으며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마13장55절]「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하였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모든 면이 우리와 꼭 같은 분으로 나타내신 것은 영 육간에 우리도 예수님과 같다는 원리로써 전 세상과 후 세상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만일에 예수님과 우리들이 영육간 구별되어 있다면 장차 우리가 부활한다는 문제나 하늘나라에 간다는 문제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우리는 영육간 같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상태로 이루워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후 생활과 모든 면이 우리와 꼭 같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수 있다는 사실도 믿어지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중에 나타내신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전후 세상에 관한 형편을 알아보는 동시에 우리들의 형편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성 만찬 예식장에서 마지막 폐회 기도하실 때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시었다. 
[요17장5~10절]「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하셨다. 
이 기도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영광중에 계시던 그 영화를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일1장2절]「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자니라」(요1장1~5절 비교) 하였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요6장62절]「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셨고 (요1장1~5, 14절) 또 그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으니 (골1장14~17)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지실만한 우리의 구주이시다. (요10장30절, 빌2장6~7절, 사9장6절 비교) 
그러면 창조주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육체를 쓰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거던 하물며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욥38장7절) 신령이 육체를 쓰고 인생으로 태어날 수 없겠는가? 예수님은 우리하고 다른 것이 지위 뿐이요 영적상태는 우리와 꼭 같으신 분이시다. 
일반사람들은 하늘에서 범죄한 천사들과 범죄한 하늘 성민들의 신령이 육체의 옷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 모든 하늘 천사들과 성민들이 사단의 꾀임수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이들도 있으니 그들을 예수님이 찾아 이 죄악세상으로 오시게 되었던 것이다. 기록한 바, 
[눅19장10절]「인자의 온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함이니라」하시었다.


 제28장 하나님의 산 기운으로 영혼을 만드심

 

모세가 기록한 창조론 가운데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과정은 창조이전과 이 세상에 관한 진리가 들어있다. 그러면 아담이 지음을 받던 상태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기록한 바, 
[창2:7절]「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생기를 코에다 불어넣으시니 산 영혼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생기는 곧 산 영혼이다. 하나님의 생기 곧 산 기운은 사람의 입기운과 같은 것이 아니고 어디다 부시던지 하나님의 생기가 나가는 곳마다 영이 되는 것이다. 이 뜻을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으니 부활하신 첫날 저녁에 
[요20장22절]「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아라」하신 것은 하나님의 생기 곧 산 기운은 하나님의 원동력에서 나오는 분자이기 때문에 모든 천사들이나 영혼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며 우리는 말하기를, 
[히12장9절]「우리의 영의 아버지」라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주안에 있는 천만 천사들이 다 하나님의 산 기운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코에 불어 넣으신 산 기운을 하나님이 주신 신이라고 기록하였다. 
[전12장7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조물주를 기억하라」 
[눅12장20절]「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영혼을 도로 찾은즉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를 신이라 또는 영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산 기운은 천만 천사가 되었음으로 순종만 한다면 영원히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기에서 분자되어 나오는 영을 혹은 바람으로도 표상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에스겔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겔37장8~10절]「내가 볼때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그 위에 덮혔으나 그러나 그 속에 생기가 없더라 저가 내게 이르시되 인생아 바람을 향하여 예언하고 예언하여 바람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바람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사망당한 자에게 불어 살게하라 하시거늘 이에 내가 그 명하신 대로 예언하니 생기가 저희에게 들어가매 곧 살아서 일어나 발로 서니 지극히 큰 군대라」하였고 이 바람을 결론에 가서 하나님의 신 이라고 하였다. 기록한 바, 
[겔34장14절]「또 내가 내 신을 너희속에 둔 즉 너희가 살것이요」하시었다. 시편 기자도 이 바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시104편4절]「바람으로 그 사자를 삼으심이여 화염은 그의 사역자로다」하였으며 또는 
[히1장7절]「천사를 의론하여 가라사대 그 천사들로 바람이 되게하며 그 부리는 자들로 불꽃이 되게 하느니라」하였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바람은 공중에 불어다니는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산 기운이다. 이 산 기운을 사람에게서 뽑으면 사람이 죽고 이 산 기운을 도로 사람에게 넣으면 사람은 다시산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길「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은 즉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겟느냐」하셨다. 하나님은 이 영혼을 사람에게서 뽑아가실 권세도 있고 도로 넣어주실 권세도 있다. 옛날 엘리야 당시에 사르밧 땅 한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엘리야가 기도하기를 
[왕상17장21~22절]「여호와여 원컨데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하였다. 그러므로 흙에 속한 몸은 산 영혼이 임시 있는 집과 같은 것이다. 사도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5장47~49절]「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하였다. 
여기에서 연구할 것은 아담은 근본 하늘에 속한 자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흙에 속한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흙덩어리에다가 하나님의 산 기운을 불어 넣으심으로 산 영혼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흙덩어리가 산영혼이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산 기운이 산 영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생기는 사람의 입기운과 같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항상 살아있게 된다. 
이 산 영혼은 흙덩어리가 없어지더라도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 영혼은 아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우리 영혼의 장막집을 벗어나면 하늘에 있는 장막집이 하늘에 있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벧후1장13~15절]「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암이라」하였으며 또는 
[고후5장1~9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 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함이라 ……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게 하는자 되기를 힘쓰노라」하였으며 
[빌1장21~24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하였다. 
땅에 있는 우리 영혼이 이땅에 있는 장막집 곧 육체를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서 임시있다가 장차 예수께서 최후 심판장으로 강림 하실때에 예수님과 함께 오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살전4장14절]「예수 안에서 이미 자는자도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오게 하시리라」하였으며 또는 
[살전3장13절]「우리 주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하였으며, 또는 
[유1장14절]「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하였다. 
주께서 장차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최후의 날에 온전케된 의인의 영혼들과 함께 썩지 아니할 영광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영광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을 가리켜 완전 부활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영혼들이 영광의 옷 곧 천사의 옷을입고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사세계에서 살게되는 것이며 우주 천체안에 있는 각 별세계를 시찰하게 되는 것이다.


■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 있다


성경에는 죽음의 뜻을 영혼과 육신이 같이 영멸 한다고 하지 아니하고 영육의 분리를 가르쳐 죽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전12장7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전에 기억하라」하였으며 또는 
[마10장28절]「몸은 죽어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할 자를 두려워 하지 말고」하였으니 죽음의 뜻을 육신의 영멸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는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예수께서 죽으셨다고 성경에 기록하였는데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선재의 영체가 있으신 분이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때 마리아의 몸을 빌어 육체의 옷을 입으셨으나 (요1:4)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는「영혼이 떠나셨다」(마27장50절) 고 하였다. 예수님은 육체를 떠나심으로서 옥에 갇힌 영들에게 기별을 전하셨다. (벧전3장19~20절 참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재의 영체는 절대로 죽지 않으셨다. 삼일동안은 고사하고 단 한시간이라도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죽음이라고 성경에 기록하였으니 죽음은 영혼의 멸절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가리키신 것이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1장11절14절]「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도 말씀하시고 또는「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11장14절) 고도 말씀하셨다. 
성경에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 것은 사망과 부활의 중간에 생명이 지속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후에 생명의 존재가 없다면 다시 깨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잠이 죽음과 다른 이유는 여기 있는 것이다. 즉 생명의 존재가 있어서 종말에 깨어나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의 중간에 영혼은 하늘 낙원에서 쉬고 육신 곧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바리새 교인들의 완악함을 책망 하실때 
[마23장33절]「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하시었으며 사도 베드로도 기록하기를 
[벧후2장4절]「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전3장19~20절 비교) 하였다. 
범죄한 천사들이 갇힌 지옥이나 범죄한 영혼이 갇히는 지옥이나 지옥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지옥과 낙원에 대하여 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가서 위로를 받는다는 비유의 말씀을 하시었다. (눅16장19~29절 참고) 혹은 생각하기를 위에 기록한 말씀은 비유니 인정할 바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비유라 할지라도 실지와 반대되는 비유는 하시지 않으시고 또는 진리를 거스리는 비유는 하시지도 않으신다. 다른 어떠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거짓된 예화를 가지고 당신의 교훈으로 가르치신 예가 없다. 
예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신 만큼 (막4장33~34절) 비유로 복음을 전하심은 세상을 창조하므로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려 하셨으니 (마13장33~34절) 비유로 복음을 전하심은 세상을 창조하므로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려 하셨으니 (마13장34~35절) 곧 전 세상의 오묘한 진리와 영혼 문제를 드러내고자 하심이다. 
그러므로 그 여러 가지 비유중에서 하나라도 진리가 아닌 비유가 없고 또 진리에 위반 되는 비유가 없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때에 같이 달린 강도 하나가 예수님께 간청하기를, 
[눅23장42~43절]「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시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그날 당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이 더러 있으나 조금도 다르게 해석할 이유가 없는 것은 다른 삼복음 보다는 누가복음에는 영혼의 중대성과 영혼의 진리를 드러낸 것이 특별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가운데서 영혼에 대한 몇가지 문제를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눅12장4~5절]「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눅16장19~31절]「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와 낙원과 지옥설」 
[눅23장46절]「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장42~43절]「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4장39절]「영은 뼈와 살이 없으되」위에 기록된 여러가지 말씀을 비교해서 본다면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영혼문제를 특별히 깨달았던 것이 증명되며 누가복음을 기록한 중에도 전후가 똑같은 뜻을 표시한 것을 본다면「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한 그 말씀은 문자그대로 되어 있는 것이 증명된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첫날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장소에서 영의 예수를 보는 줄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눅24장39절]「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으니라」하실 때에 제자들도 영의 예수를 본 줄로 생각했고 또 예수께서도 그것을 시인하는 태도로 다만 영은 뼈와 살이 없다고 하였을 뿐이다. 사도 바울도 기록하기를 
[고후12장2~3절]「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하였다. 여기에 분명히 영혼이 몸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영혼이 몸 밖에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말하였다. 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영이 없다면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이런 말을 할 이치가 만무하다. 마태도 기록하기를 
[마27장50절]「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즉시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신다는 말씀이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후5장1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하였으며 또는 
[고후5장3~4절]「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하였으며 또는 
[고후5장8절]「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하였으며 
[빌1장23~24절]「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하였다. 
떠난 후에 즉시 그리스도와 함꼐 있는것이 아니라면「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말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벧후1장13절]「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알리라」하였으니 장막(육신)을 입고 장막을 벗는 것이 곧 영혼이 아니고 무엇이랴? 
육체는 죽어서 땅속에 썩든지 혹 불에 사라졌든지간에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 섭취되어 버리고 만다. 부활시에 동일성을 지속하는 것은 영혼뿐이다. 그리고,                        
[계6장9~11절]「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들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요한 계시록 6장9절에 하단에 기록된 제단을 땅에 제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생각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을 생각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4장1절에 보면「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하셨으니 땅에 제단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폐지한 후에 일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8장3절에 다른 천사가 분향하는 일이 있다. 그러면 이 제단도 땅에 제단이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8절에도「한 천사가 제단으로부터」나왔다고 하였다. 
연결해서 연구하면 분명히 하늘제단이다. 이 하늘제단 아래있는 영혼들은 지상에서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이 하늘 성전구내에 있는 것을 요한이 묵시중에 보았던 것이다. 사도 바울도 동일한 뜻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히브리인들에게 보냈다. 기록한 바, 
[히12장22~23절]「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혼들이」 다 같이 있다는것으로 분명히 말해 놓았다. 요한복음 4장2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으니」하신 것 같이 하늘성전내에는 거할 곳이 많은 것이다. 
지상의 솔로몬 성전안에 방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이 하늘성전에도 방들이 많이 있어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도들의 영혼과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거기있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혼문제를 다시 한번 더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첫째 영혼의 근본원리를 깨닫게 되면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영혼이 육체를 쓰기전에 이미 전 세상에서 있었다면 우리 육체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영혼은 살아 남아있다는 것이 원칙이요 우리 육체가 생겨 남으로 영혼도 따라서 생겨났다면 사람이 죽는 동시에 영혼도 따라서 없어지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 세상에 관한 문제를 깊이 연구해서 영혼의 원리를 깨달아야 할것이다. 이 영혼문제를 좀더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이 책외에「천사 세계에서 온 손님들」이라는 책을 연구하면 정확하게 깨달아 질것이다.


■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


사람이 죽은후 영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은 창세기 2장17절에「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하셨고 에스겔 18장4절에는「오직 범죄한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으니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죽은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물론 범죄한 사람이 죽을 때에는 그의 영혼도 따라서 죽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육신은 흙의 존재요.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영의 존재이다 (전12장7절)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이 다르고 영혼의 죽음이 다르다 육신의 죽음은 첫째 사망이요 영혼의 죽음은 둘째 사망이다. (눅12장4~5, 계20장6,14절 비교) 
첫째 사망 즉 육신의 죽음은 육신의 조상인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의 죄 때문이요 (롬5장12~18, 고전15장47~50절 비교) 둘째 사망 즉 영혼의 죽음은 천사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범죄한 댓가로 받는 것이다.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는바 (계20장14~15절) 천사세계에서 행한 행동은 이 인간 세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영육간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영혼문제는 천주교회나 장로교회에서 가르치는 영혼 불멸설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범죄한 영혼뿐만 아니라 범죄한 천사까지도 최후심판을 받고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히9장27절]「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하였다. 모든 사람은 육신이 죽은 후에는 영혼이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법이다 (롬2장6~10) 기록한 바, 
[계20장12절]「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하였으며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눅12장47~48절]「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하시었으니 죄의 가치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후 심판시에는 각 사람이 행위에 따라 형벌을 받되 한시간이든 하루이든 한 세대이든 간에 죄의 차별을 따라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쳐 주시고있다. 
최후에는 죄의 형을 다 받은 후에 결국 사망으로 영원히 끝을 맺고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다. 그러나 만국을 미혹케한 마귀와 거짓 선지자들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기록한 바, 
[계20장10절]「또는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하시었다.

 

제29장 영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 


그러나 영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약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증거해 놓은 영혼문제는 뿌리까지 삭제해 버리고 희미한 달빛 아래서 기록해 놓은 구약성경에 영혼문제만 가지고 연구하기 때문에 그들이 바른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영혼이라는 기록이 수백번 있다하더라도 숫자로 가결 지을것이 아니라 영혼의 주인이 되신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교훈을 받은 사도들의 말씀으로 중심을 삼고 연구해야 하겠다 
그리고 영혼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주장하는 성경절들은 신약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구약성경에서만 몇 구절 가지고 해명하고 있으나 그 성경절들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영혼을 반대한 기록이 아니다. 기록한 바, 
[시6장5절]「사망중에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이리까」하였는 바 이 말씀은 같은 장1절부터 5절까지 계속해서 자세히 연구해 보면 죽은 후에 영혼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하게 되면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록한 바, 
[시6장1~4절]「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시고 ·…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하였다. 그 다음은 
[시115장17절]「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하였는 바 이 말씀도 그 다음절에 말하기를 
[시115장18절]「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하였으니 이 말씀도 계속해서 연구해 보면 구원받지 못하게 되면 지옥에서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 다음은, 
[시146장4절]「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하였는바 이 말씀도 같은 장 1절에서부터 4절까지 계속해서 읽어보면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는 권세있는 방백들이라도 죽어 땅속에 들어가면 내가 의지했던 모든 계획이 그 날에 다 소멸된다는 말씀이다. 기록한 바, 
[시146장1~4절]「방백들은 의지하지 말것이며 도울수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감이여 그 도모가 당일에 소멸하리로다」하였다. 그 다음은 전도서에 기록한 말씀인데 
[전9장5절]「무릇 산자는 죽을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하였으며 또는 
[전9장10절]「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하였으며 또는 
[전3장19~20절]「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로다 이도 죽고 저도 죽는지라 다 한곳으로 가나니 다 흙에서 나서 다 흙으로 돌아가도다」하였다 
이 모든 말씀을 그대로 보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없고 또는 짐승이나 사람이나 죽은 후에는 똑같은 것으로 해석하게 되나 그러나 같은 전도서에 기록한 말씀으로 자세히 연구해 보면 영혼에 대한 기록은 별도로 명백히 증거해 놓았다. 기록한 바, 
[전12장7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조물주를 기억하라」하였다 
한 솜씨로 기록한 같은 전도서에 두가지 말이 있을수 없다. 다만,육신에 대한 말씀과 영혼에 대한 말씀이 각각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 다음은 욥기서에 기록한 말씀인데 욥기서에도 그와 같은 기록이 있는 바 
[욥14장10절]「사람이 죽으면 소멸 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 즉 그가 어디 있느뇨」(욥17장13~16절 참고) 하였다. 
이 말씀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육신에 대한 말이다. 욥이 이 말을 할 때에는 영새의 소망이 전혀 없을때에 한말이다. 그는 부활의 소망도 없는 중에 한 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같은 장 7절서부터 14절까지 계속해서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욥14장12~14절]「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하였다. 
부활의 소망이 없이 한말이라면 영혼에 대한 문제는 모르고 한말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혹은 생각하기를 성경의 기록한 말씀은 다 하나님의 참뜻을 그대로 기록한 줄 안다. 
이것은 크게 오해한 것이다. 성경에는 3종의 말이있다. 신구약 성경전서 66권내에는 수백명의 발언한 여러 사람의 말이 들어있는데 그 여러 사람중에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 바른 교훈도 있으나 그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반대한 말도 있고 또는 사람의 의견을 따라 그릇된 말도 있으므로 그 성경절의 전후를 자세히 살펴보고 확실한 뜻을 밝혀야 할 것이다. 
욥은 그 당시에 알지 못하고 한 말도 많이 있으며 심지어 사단이 욥의 가정에 침입하여 시험한 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생각한 때도 있었다 (욥1장21절) 
그러므로 욥14장10절이나 욥17장12~16절의 기록한 욥이 병중에 고통을 당하고 있을때 병문안 하러 온 세사람과 서로 그릇된 변론중에 나온 욥의 말인데 세친구의 말만 잘못된 것이 아니고 욥의 말도 잘못 되었던 것이다. 
욥의 말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엘리후는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릇된 변론하는 욥과 세친구까지 견책하였으며 (욥32장1~3절) 욥은 하나님의 견책을 받고 하나님앞에서 자복까지 하였다 (욥38장1~3절) (욥42장1~5절 비교) 
그러므로 욥14장10절의 말이나 욥17장12~16절의 말은 육신에 대한 말이지 영혼에 대한 말이 아니다. 이 외에도 그와 같은 성경절들이 많이 있으나 지면상 약하기로 하겠다.

 

제30장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22장30절]「부활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하시었다. (막12장25절, 눅20장36절 비교)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5장50~52절]「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하였다 
이런 문제만 생각해 본대도 아담은 미완성품이요 천사와 같이 변형을 입은 사람은 완전한 완성품이라는 것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5장47~49절]「첫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하였다 
그러므로 아담은 땅에 속한 자로 지음을 받았고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자로서 구속함을 받는 성도들을 땅에 속한자의 형상에서 하늘에 속한 자로 변형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아담은 영원히 살도록 지음을 받은것이 아니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창조 사업의 시초에 놓여 있는 미완성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 시조 아담은 후에 오실자의 표상이라고 하였는데 (롬5장14절) 아담은 후에 오신 예수님의 반대되는 표상이 된 것이다. 즉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죽은 것과 예수님 한분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살게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롬5장12~21절) 
죽는 법이 있으면 사는 법도 있는 것이다. 
육의 법은 죽이는 것이요, 영의 법은 사는 것이다. 옛 언약은 죽이는 것이요, 새 언약은 살리는 것이다

 

제31장 천사세계에서는 왜 죄를 짓게 하셨는가?

 

혹은 생각하기를 전지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천사들은 왜 범죄하게 하셨느냐? 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으로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롬9장21~24절]「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하였다. 
천사세계라고 해서 전부를 다 완전하게 하시고 똑 같이 창조하시면 하나님의 영광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고 권위도 모르고 자신들의 기쁨도 모르고 만족도 모르는 무지한 짐승이나 무생물 같은 돌이나 흙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의 말과 같이 귀한 그릇을 위하여 천한 그릇을 만들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망의 그릇을 만드셨고 귀한 그릇의 영광을 알게 하고자 하사 천한 그릇과 멸망받을 그릇을 만드셨다고 하셨으니 구원받을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수고를 하셨는가? 보통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실물 교훈으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 천사들이 범죄할 때마다 지상으로 쫓겨 내려오는 일은 무슨 까닭일까? (벧후2장4절)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였다고 하였으며「아침의 아들 계명성도」쫓겨나 지상으로 내려왔고「화광이 발하는 보석사이로 왕래하던 그룹 천사도」쫓겨나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하였으니 (사14장4~15절) (겔28장11~17절) (계12장9절 참조) 이 지상은 틀림없이 범죄한 천사들의 교도소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데 대하여 예언으로 알려주는 도피성의 예언이 있다.


■ 도피성은 왜 두었나?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6개 도피성이 있는데 요단강 동편에 3개 도피성이 있고 요단강 서편에 3개 도피성이 있는데 (민35장10~15절) 이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죄인들이 임시 도피하고 있는 곳인데 이는 복수자의 손에 붙들려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 
모세 율법에는 부지중에 살인을 했든 고의로 살인을 했든간에 죽은 사람의 부모형제나 친척이 있어 그 살인한 자를 잡아 죽여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 법이있었다. 
그래서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복수자의 손에 붙들리기 전에 도피성으로 피난하도록 예비하신 곳이 도피성이다. 
그러나 부지중이 아니고 서로 싸우는 중에 맞아 죽었다든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일이 조사결과에 드러날 때에 도피성이 왔다 하더라도 법정에 넘겨주어 처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피성에 도피한 죄인들은 어느 때까지 머물러 있게 하느냐 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한 대 제사장이 죽어야 도피성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민35장15~32절) 이 도피성의 역사를 구약 정치법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단9장24절]「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한 예언을 따라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한 대 제사장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백성들이 하늘 고향에 가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기록한 바 
[히11장14~16절]「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하였다. 
구약에 절기나 도피성의 제도나 모두 다 신약에 나타날 그림자이기 때문에 구약의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한 대 제사장은 신약의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한 대 제사장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다. 
구약 성경 레위기 23장5~16절까지 보면 유월절 지낸후에 첫 안식후 첫날 (일요일) 에 처음익은 곡식 한단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요제의 제물을 드리고 그날부터 50일 되는 날 새 소제를 드린 일이 있었다. 
이 예언도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까지 이루어질 예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와 같이 도피성에 관한 문제도 도피성의 죄인들이 기름부음을 받은 거룩한 대 제사장이 죽으므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 같이 (민35장25절) 신약에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한 대 제사장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영적 도피성인 이 지구에 감금되었던 하늘의 성민들이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늘 본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생들이 육체는 비록 땅에 속한자의 형상을 받았으나 영은 하늘에 속한 천사세계의 성민들이다. 
도피성인 이 지구에 갇혀있는 하늘 성민들이 그리스도의 율법 곧 새 언약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하늘 본향에 가게되는 것을 진리로 보이신 것이다.

 

제32장 옛 언약이 새 언약으로 변역함


기록 하였으되

[히7장12절]「제사 직분이 변역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하였다.오늘날 그리스도 교회가 많이 있지만, 시내산에서 세운 율법이 변역되었다고 한다면 놀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옛 계명 곧 옛 언약은 시내 산에서 모세로 말미암아 세워주신 것이다. (참고 출19장20~25절, 20장1~17절) 
그러나 새 언약 곧 새율법은 절기지키는 시온산에서 세워질 것으로 선지자들은 예언하였다. 
[사2장2~3절]「말일에 여호와의 전의산이 (시온산을 여호와의 산이라고 함)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것이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공동 번역에는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 가자 하였다)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하였다. 
옛 율법이 시내산에서 나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시온에서 나온다는 율법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인가? 그리고 시온산은 어디를 두고 하신 말씀인가? 현재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예언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어디를 가리키신 말씀인가?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다 멸망으로 들어 간다. 이 문제에 대해 차례로 성경절들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사33장20~22절]「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같을 것이라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 (새 언약) 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하였다. 
시온성에서 절기 지키며 새 언약 (새 율법) 을 세우신 곳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유월절 지키시며, 
[눅22장19~20절]「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었다. 
이 새 언약에 대해서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분명하게 예언하였다. 기록한 바 
[렘31장31~33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네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다」하시었다. 
위의 말씀을 해석하자면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사랑하며 인도하였으나 시내산에서 세운 율법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없고 다 죽으므로 결국은 당신의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무조건 사는법을 주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장차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 지키시며 새 언약 곧 시온의 율법을 세우실 것을 내다보고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담대히 새 언약을 증거하고 있다. 
[히8장7~8절]「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다면 둘째것을 요구할 일이 없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하였고 또는 
[히8장13절]「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하였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새 언약을 세우셨으니 옛 언약은 차츰 차츰 물러 나간다는 말씀이다. 이 새 언약에 대해 미가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미4장1~2절]「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위에 뛰어 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하나님이) 그 도로 (새 언약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하였다. 
이 예언이 이사야2장 2절3절의 말씀과 똑같이 된 것은 두 사람의 증인으로서 확실하다는 증거로 같은 말씀으로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말일에 라는 말씀은 구약의 말일은 예수 초림 때를 두고 하신 말씀인데 이사야 2장2~3절의 예언은 예수 초림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세우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고 미가 4장1~2절의 예언은 신약의 말세인 마지막때 즉 오늘날에 사단에게 빼앗겼던 새 언약을 다시 회복하는 때를 두고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시온산이라 함은 육신적으로 해석한다면 유대나라 예루살렘성 주위를 말하겠지만 영적으로는 어디든지 새 언약 절기를 지키는 곳이 시온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광의 시온산을 가리켜 선지자들은 예언을 많이 하였다. 
[시132편13~14절]「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하였으며 또는 
[시50편2절]「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셨도다」하였으며 또는 
[사24장23절]「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 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하였으며 또는 
[사25장6~9]「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시온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백성들이)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 하리라 할 것이며」 
[습3장14~17절]「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쫓아 내었으며 이스라엘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계14장1절]「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미4장6~8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하였다.
시온산에서 세워주신 새 언약이 얼마나 복된 기별인지 그 값어치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옛 언약을 세울 때에는 시내산에서 불 붙는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장엄한 음성으로 발표해 주셨지만 새 언약을 세우실 때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조용히 세우셨으므로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시내산 옛 언약으로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육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세우신 언약은 힘이 없어 보이고 시내산에서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시내산에서 명하신 것은 땅에서 명하신 것이라고 하였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명하신 것은 하늘에서 명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기록된 바 
[히12장25절]「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쫓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하였다. 
그리고 이사야 2장2절의 말씀중에「율법이 시온산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하신 이 예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24장47절]「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하시었다. 
[공동번역 누가복음24장47절]「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말씀하신 그 예언은 이사야 2장2~3절의 예언과 미가서 4장1~2절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해석하신 말씀이다. 

■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비교표


옛 언약 곧 옛 율법은 시내산에서 주셨고 
(느9장13~14절, 출20장1~20절) 
새 언약 곧 새 율법은 시온산에서 주셨다. 
(사2장2~3절, 미4장1~2절, 렘31장31절, 눅22장 7~20절, 히8장7~8절 비교) 

옛 언약의 제사 직분은 아론의 반차 (히7장11~13절) 
새 언약의 제사 직분은 멜기세덱의 반차 (시110편4절, 히7장14~21절) 

모세 율법은 땅에서 명하시고 (참고, 히12장18~25절) 
그리스도의 율법은 하늘에서 명하심 (고전9장21절, 히12장25절) 

옛 언약은 양잡고 유월절 지키고 (출12장5~11절) 
새 언약은 떡과 포도주로 유월절 지킴 (창14장18~20절 눅22장7~20절) 

옛 무교절은 7일동안 무교병 먹음 (출12장15절) 
새 무교절은 금식함으로 수난절 지킴 (마9장14~15절, 막2장18~20절) 

옛 초실절 즉 칠칠절은 처음익은 곡식을 요제로 드림 (레23장10~11절) 
신약은 부활절 지킴 (눅24장13~43절, 고전15장20절) 

칠칠절 끝날 (레23장15~16절) 
오순절 성령강림일 (행2장1~4절, 20장16절, 고전16장8절) 

나팔절 기도주간 속죄일 통회기도,초막절 칠일동안 성회 (레23장24~36절) 
나팔절 기도주간 속죄일 통회기도, 초막절 칠일동안 전도대회 (요7장2, 14, 37~39절)

 

혹은 말하기를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행사에 있어서 초막절은 있어도 나팔절이나 속죄일을 지킨 흔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초막절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기록된바 
[신16장16절]「너희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대하8장13절) 하시었다. 
칠개 절기를 삼차로 갈라서 정할 때 나팔절,속죄일을 포함해서 초막절이라고 하였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초막절 지킨 흔적이 있으면 나팔절,속죄일도 지켰다는 증거가 된다.


제33장 새 언약의 제도


새 언약은 옛언약을 완성시키는 것이므로 옛 의문의 제도가 변역하여 신령적 제도로 행하게 된것이다. 기록한 바 
[고전5장7~8절]「우리의 유월절 양을 이미 죽여 제사드렸으니 그 양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러므로 우리가 절기를 지키되」또는, 
[히7장12절]「제사의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하였다. 의문의 직분이 성령의 직분으로 변역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 죄악세상 (애굽) 에서 나온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나올 때에 행하신 유월절을 택하여 마지막으로 당신의 제자들과유월절 성만찬 예식으로 새 언약을 주신 것이다. (눅22장7~13절, 19~20절, 출13장8~10절 비교) 
예수께서 행하신 유월절은 양을 먹는 대신에 당신의 몸을 표상하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이며 양의 피를 제단이나 백성들에게 뿌리는 대신에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을 마시게 하여 우리의 몸을 정결케 함으로 「성령이 거하실 성령의 전이 되게하신 새 언약의 도리를 주셨으니 우리는 이날을 기억하고 이날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고전11장23~26절, 눅22장15~20절,요6장53~55절 비교) 
만일에 예수께서 마지막 행사로 남겨주신 유월절 예식이 아무날에나 행하여도 관계가 없을 것 같으면 아무날이나 성찬을 행하시고 아무날에나 행하여도 관계없는 것으로 본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주시려고 유월절을 기다리고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눅22장15절]「내가 고난을 받기전에 너희와 한가지로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하신 것은 유월절이 아니고는 당신의 사업을 이룰수 없기 때문에 그날을 기다려서 제자들과 한가지로 유월절 잡수시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식을 유월절 먹는 잔치라고 기록한 것이다. (참고 눅22장8~15절, 마26장17절, 막14장12~14절) 
유대 역세의 정월14일 바로 1,500년간의 장구한 시일에 걸쳐서 유월절 양을 잡아 내려온 그달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잡수시고 이 절기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당신의 죽으심을 기념할 날로 제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의 크신 공로를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새 언약으로 인을 쳐 놓으신 것이다. 유월절 떡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이되는 것이며 유월절 포도즙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이 되는 것이다. 
유월절은 대속죄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밝혀 보여 주시는 예식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성찬예식의 중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22장19~20절]「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고 또는 
[요6장53~5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하셨다. 
이 말씀은 당신이 유월절 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실 몸과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을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인을 쳐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식으로 말미암아 주님안에 거하게 되므로 생명을 얻게 되는 동시에 마지막 날에 살려 주심의 약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잔을 가지시고 
[눅22장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하시면서 포도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셨다. 
[요15장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하셨다. 
이 말씀은 마지막 성찬예식장에서 포도즙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대속죄의 크신 사랑의 공로를 유월절 성찬 예식에데가 새 언약으로 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요13장34절]「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장12절]「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하시었다. 
[요13장13~15절]「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하셨다. 
요한복음13장34절의「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하신 말씀은 누가복음 22장20절의「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이다. 
다른 삼복음에는「새 계명」이라고 하지 않고「새 언약」또는「언약」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새 언약」이라고 기록하지 않고「새 계명」(요13장34절, 15장10~12절)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새 언약 곧 새 계명은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주의 기념일로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또한 형제들끼리 주님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유월절이 되는 것이다. 
[고전10장16~17절]「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하였으니 이 예식은 형제끼리 사랑뿐 아니라 주님안에서 한몸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몸을 미원하는 사람이 없나니 주님안에서 한 몸이 되면 또한 자기 몸을 사랑하는것 같이 형제의 몸을 자기의 몸 같이 사랑할 것이다.


■ 새 언약은 복음이다


그리고 새 언약을 또한 복음이라고 하였는데 복음이라는 뜻은 복된 소리라는 말인데 구약성경도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 받으신 때부터 시작이다. 기록한 바 
[눅16장16절]「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 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하신「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라고 하신 것은 침례 요한 이후부터라는 말씀인데 예수님 침례 받으시고 40일 금식하신 후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셨다. 기록한 바 
[막1장1절]「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하시었고 또는 
[마4장17절,23절]「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하시며「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시작하셨다. 
그때부터 전파하시기 시작하신 천국 복음은 십자가로 끝마친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말씀하셨다. 
[마24장14절]「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하시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3년동안 행하시고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어떻게 해야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심각히 생각할 문제이다. 우선 주님이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이 행하신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실지 교훈으로서 행하신 규례는 첫째 침례가 될 것이며 (마3장13~17절) 둘째는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 읽는 것과 (눅4장16절,마24장20절 비교) 초막절 때에 성전에 올라가사 전도하시는 것과 (요7장2절, 37절) 유월절에 성만찬을 행하시며, 
[눅22장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하신 그 모두가 우리에게 가르치신 천국 복음이라고 하겠다. 
혹은 말하기를 그 당시에는 예수님도 유대인이므로 모세율법을 따라 안식일도 지키시고 초막절도 지키시고 유월절도 지키셨다고 주장하며 십자가 이후에는 모세 율법의 모든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키신 절기는 모세 율법의 절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3년동안 실지 교훈으로 가르쳐 주신것이 다 새 언약의 절기인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을 십자가 후에는 필요없다면 예수님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3년동안 너희에게 가르치고「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장19~20절) 하셨고 또는 
[요13장15절]「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하신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께서 3년동안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십자가 후에도 계속해서 전파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고전11장1절]「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은자 되라」또는, 
[고전11장23~26절]「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예수께서 십자가 전에 가르치신 복음 그대로 전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복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나 여러 교회가 주님이 가르치신 실지 교훈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록한 바, 
[갈1장6~9절]「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하였으니 이 다른 복음이 무엇이겠는가? 
이 다른 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시지 않은 복음은 다 다른 복음이 된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셨는데 일요일 지키면 다른 복음이 될 것이요 예수님은 초막절을 지키셨는데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지키면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에도 기록 하기를, 
[고후11장4절]「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하였다. 
사도 시대에나 오늘날에나 진리가 아닌 다른 복음은 잘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 하더라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았다면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 1장6~9절까지 보면 다른 복음을 받거나 전하면 저주받는다고 거듭 거듭 말해놓은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심각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할 때마다 복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롬1장9절]「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안에서」 
[롬1장14~17절]「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0장16~17절]「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롬15장16~19절]「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고후4장4절]「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11장4절]「다른 복음을 받게 할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엡1장13~14절]「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엡3장4~7절]「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골1장5~6절]「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갈1장6~9절]「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살전2장4절]「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살후1장7~9절]「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라」 
[살후2장13~14절]「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 
[빌4장3절]「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며 저 부녀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렇게 중요하게 말해 놓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2세기 중엽부터 복음은 한가지씩 변하기 시작하여 4세기 중엽에 와서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완전히 변해지고 말았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일찍 주님께서 가라지 비유로 말씀하신 예언도 있었고 (마13장24~30절, 36~40절 참고) 사도 바울도 장차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과 거짓 진리를 믿게 될 것까지 예언하였다.(살후2장3~12절 참고) 
그 예언의 말씀과 같이 오늘날에 와서는 무엇이 변했느냐? 하는 정도로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복음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세기 중엽 로마 교황 아니케터스(Anicetue) 시대와 빅터(Victor) 교황시대로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325년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와서 닛산(Nisan) 월 14일 유월절 지키던 것을 완전 폐지하고 말았다. (기독교사 초대편 121 - 123 페이지 참고, 요약 기독교회사 49페이지 참고, 상해천주교 요리 중펴 22~23페이지 참고, 천주교회책 교부들의 신앙 125 - 126 페이지 참고) 위의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분명하게 증거되어 있지만 생명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분들은 오히려 변경된 것은 잘된 것으로 생각들 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가지라도 변경된 것은 거짓 교리이다.


■ 복음의 일꾼은 새 언약의 일꾼이다


복음은 또한 새 언약이라고 하였다. 기록한 바「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 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3장7절) 하였으며 또는 
[고후3장6절]「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하였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일군이라고도 하고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로마 교회에 편지할 때에는 
[롬15장16절]「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하였으며 예수님에 대해서는 
[히9장15절]「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하였다. 이 새 언약에 대하여 주님께서 직접 유월절 만찬석에서 
[눅22장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하시며 선언해 주셨다. 복음이나 새 언약은 모두가 주님 살아계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교훈이다. 주님 십자가 후에는 다른 진리나 교리를 가르쳐 주신 일이 없고 십자가 전에 가르쳐 주신 교훈을 재강조 하시며, 
[마28장20절]「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신 것 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3장34절에는 새 계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용은 똑같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누가가 새 언약이라고 기록한 그 장소가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하신 말씀이고 요한이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가 복음 안에서는 새 계명이라고 기록한 데가 없고 또 요한복음 안에는 새 언약이라는 기록이 없다. 그 이유는 결국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새 계명은 새 언약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에, 
[출34장28절]「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에 기록하셨더라」(신4장13절 참고) 
언약을 곧 계명이라고 하였으니 새 언약은 새 계명이라는 뜻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누가복음에는 잔을 가지고 새 언약이라고 하였고 요한복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이라고 하셨으니 문제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원리를 깨닫게 되면 새 언약이나 새 계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에서 
[눅22장19~20절]「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가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었다.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를 여러 형제들이 다같이 먹고 다 주님안에서 한몸이 됨으로 형제들이 서로 자기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고전10장16~17절]「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은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떡에 참예함이라」하였으니 주님 안에서 한몸이 되어 있으니 어찌 자기몸을 미워할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근본 악하기 때문에 사랑할줄 몰라도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가 내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으로 새 언약을 주신 그 말씀대로 유월절을 실행할 때에 주님의 살과 피와 여러 형제의 몸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서로 사랑함으로서 새 계명이 되는 것이다.


 제34장 유월절과 마지막 만찬


혹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마지막 성만찬 예식 행하신 날이 유월절 날이 아니고 유월절 전날 정월13일 해진 후 밤에 행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 이 삼복음에는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유월절을 예비하라」또는「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마26장17절, 막14장12절, 눅22장7~8절, 13~14절 비교) 하셨으니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혹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유월절날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유월절 양이 되셨기 때문에 유월절 양잡는 날에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이런 해석은 주님의 구속 사업에 관한 절기와 제물의 본체가 되신 예수님의 행적으로 나타나는 예언 성취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언성취로 본다면 유월절 양보다 대속죄제물이 더 큰것이다. 대속죄 제물은 성력7월10일에 잡는 것이다. (히13장11~12절, 레16장27~34절 비교) 
그러면 예수님이 대속죄 제물도 되셨으니 7월10일 대속죄일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예수님은 절기의 모든 제물이 되셨다. 
매일 드리는 상번제도 되시고 (출29장 38~39절) 안식일에 드리는 안식일 제물의 양도 되시고 (민28장9~10절) 유월절 양도 되시고 (고전5장7~8절) 대속죄 제물도 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실 날은 성력 정월 15일이 되어야 정상적인 예언성취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가장 큰 날이므로 죄인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주지 않는다. 
사도 당시에만 하여도 사도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때에 유월절이 되었으므로 유월절 지나기를 기다렸다고 기록되었다 (행12장1~4절) 그러나, 성력 정월15일 곧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발한 날이요, (민33장3절) 
또는 애굽사람의 장자 죽은 시체를 장례지내는 날이 되었으므로 (민33장4절)유대인들이 이 날에는 죄인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전례로 내려오는 행사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받는 저주 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갈3장13절, 신21장22~23절 비교]「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자라 하였음이라」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여러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 연구해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바로 유월절 다음날 무교절 날인줄 알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잡수신 날은 바로 유월절 양잡는 날 곧 정월14일 저녁이다. 기록한 바「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리이까」(막14장12절) 하였다. 

구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내려온 유월절을 더듬어 볼때 제일 처음으로 애굽에서 지키고 출애굽한 역사와 (출12장12~42절) 광야에 나와서 성막을 다 짓고 제2년에 유월절 지킨 역사와 (출40장1~25절, 민9장1~14절 비교)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땅에 들어갈 직전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 지키고 들어간 역사와 (수5장10~1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키지 않으므로 우상을 하나님인줄 알고 섬기게 되었을때 선지자를 통하여 유월절을 깨닫고 지키게 되므로 우상들을 전멸시킨 요시야왕과 히스기야왕 당시의 역사와 (왕하23장21~25절, 대하30장1~2절, 31장1절 비교) 
바벨론 포로중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성전을 짓고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킨 역사와 (스6장14~2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새 법으로 지킨 유월절을 볼때 (눅22장7~20절 고전11장23~26절 비교) 
하나님의 크신 사업이 이루어질때마다 유월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구약 당시에 나타난 유월절은 그림자이고 실지 유월절의 중대한 문제가 복음시대에 있는 것이다. 
거울에 관한 오묘한 이치를 완전히 깨닫는다면 주님의 구속사업이 무엇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40년 역사는 복음시대 2000년간에 나타날 사건을 보이신 것이다. 광야40년 역사중에 세부적 부분은 제외하고 우선 유월절에 관한 문제만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즉 출애굽 당시에 지킨 유월절은 거울이 되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지킨 것이 실상이 되고 시내 광야에 나와서 제2년에 유월절 지킨 것이 (민9장1~14절) 거울이 되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새 언약으로 지킨 것이 실상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40년이 다 차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무렵에 여리고 맞은편 길갈에서 지킨 유월절은 거울이 되고 복음시대 마지막 하늘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로 남은 자손들이 지킬 유월절은 실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이루어진 유월절은 모세로 말미암아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하사 장래일에 거울을 비추어 주신 것이요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고 십자가를 지시므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의 광야로 인도하사 실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 귀신의 처소를 발견하는 유월절


사도요한은 귀신의 처소와 귀신의 옥을 들여다 볼수 있는 진리가 나타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18장1~3절]「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해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이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하였다 
「그 영광으로 세상이 환한지라」하였는데 그 영광의 빛은 귀신의 처소와 더럽고 가증한 귀신의 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광채이다. 요시야왕도 하나님의 성전안에 귀신의 처소가 된줄도 모르고 더럽고 가증한 귀신의 옥인 줄도 모르고 18년동안 더러운 각색 귀신들과 바알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을때 그의 눈으로 하나님의 성전 안에 들여다 보니 각색 귀신의 처소인줄 알게되자 즉시 모든 귀신들을 다 파괴시키고 (왕하23장1~7절) 유월절 지키고 각 고을에 있는 우상과 신접한 자까지 다 멸하였던 것이다.(왕하23장21~25절) 
요한계시록 18장1~3절의 영광의 빛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는 유월절 성만찬의 진리의 영광이다. 과연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귀신의 처소를 눈으로 보는 것 같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때든지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게 되면 다른 신들에게는 멸망을 주고 한분이신 하나님만 섬기게 되므로 첫째 계명을 순종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유월절의 진리를 깨닫고 지키게 되면 영적 눈이 열려 자신이 알지 못하고 섬기던 우상도 알게 될뿐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많은 우상들을 보고 가증히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곧 유월절이다. 사단은 옛적에나 오늘날에나 이 유월절을 없이 하려고 갖은 노력과 술책을 다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 당시 유월절 밤에 모든 신을 심판 하시는 날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유월절을 해마다 지키면 다른신이 침입하지 못하는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날에 마지막 유월절 행사로 십자가에 달리실 당신의 몸과 보혈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단의 정권을 빼앗아 당신의 제자들에게 새 언약으로 주셨으므로 제자들이 새 언약의 제도를 지키게 되면 사단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며, 그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사단은 교회정권을 잡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원받지 못하도록 억압적 정책을 다 쓰고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주의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전할때에 자기가 죽은 후에 있을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주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록한 바 
[신13장5절]「그 선지자나 몽상자는 너희를 유인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명하여 행하라 하신 도에서 떠나게 하려는 자니 저를 죽여 너희중에서 악을 제하라」하였다. 
이 말씀은 너희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유월절을 속량하여 내신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라는 말씀인데 곧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라는 말씀이다. 복음시대에 와서도 장차 있을 거짓 선지자에 대한 주의를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벧후2장1절]「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하였다. 
「자기를 구속하신 주님을 배반」하였다는 말씀은 대속죄의 크신 공로를 세워 놓으신 유월절 성찬예식을 배반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기록하기를 
[히10장29절]「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하였다.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는 말은 유월절 성찬예식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가르쳐 하신 말씀이다. 오늘날에도 사단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빼앗긴 정권을 그대로 붙들고 있으려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 언약의 피로 자기들을 거룩하게 하신 구속주의 날을 기억치 못하게 온갖 술책을 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의 중보사업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우리들을 예수님과 교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유의하여야 할 일들을 생각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른 일로 점령되도록 무한한 간계를 고안한다. 
그 속이는 자의 괴수는 속죄의 희생과 전능하신 중보자에 대하여 밝히 나타내 보이는 큰 진리를 싫어한다. 지상성소는 하늘성소의 그림자이므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3차의 7개절기를 따라 당신의 성취시킨 그 날들에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 하심으로 (히7장25절, 롬8장26~27절, 롬8장34절, 사53장12절 참고) 이 진리를 깨닫고 행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과 교통 하게 하심으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게 되는 동시에 우리들의 마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의 오묘함은 참으로 놀라운 생명의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유월절 성만찬 새 언약을 지키게 되면 첫째는 그의 피로 이 죄악 세상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 이며, 둘째는 다른 모든 신을 멸망시킴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서 하나님의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되며, 세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힘 입어 담대히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것과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권세를 얻는 것이 된다. 그리고 최후에는 마지막 칠 재앙 면하는 표도 된다.( 출12장13~14절, 겔9장4~7절, 계7장14절, 계22장14절 참조)


■ 새 언약은 죄를 없이한다

 

 [롬3장24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공로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하였다. 값없이 의롭게 되는 것은 피로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롬4장1~8절]「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댓가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하였다.


새 언약을 믿고 지키는 자에게는 무조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겸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있는 자이다. 새 언약을 믿고 지키는 자에게는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며 일한것 없이 값없이 공로없이 의롭다 하시고 또 영생을 겸하여 주심으로 큰복이 되며 큰 선물이 된다. 
[롬11장6절]「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못하느니라」하였으며 
[롬3장20~22절]「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하였다. 만일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다면 차별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주신다 해서 무조건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약속한 그 안에서 주시는 것이다. 은혜는 죄사함을 받지 않고는 주실수 없다. 병자는 치료를 받아야 되고 빚진자는 빚을 갚아야 한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병자의 병도 치료되고 빚진자의 빚도 탕감된다. 새 언약을 범하지 않는 한 죄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은혜아래있다 해서 무조건 죄를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언약안에서는 죄로 인정받지 않지만 세상 법에는 죄가 되니 형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옛 율법이나 세상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선하게 보는 것은 복음을 위해 선한 일을 해야한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그러한 뜻에서 한 말이라. 
[롬3장31절]「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 느니라」하였다. 이것은 구원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도덕적 율법이 없이는 교회안에서 질서를 잡기 곤란하고 또 세상에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빛을 내지 못함으로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도덕적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니요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되지 못하고 자기 사는 동안까지 현상유지가 되는 것 뿐이다. 
[롬7장1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된 알지 못하느냐」하였다. 사도 바울도 율법에 대하여 흠이 없었다고 자부하였다. 기록된 바, 
[빌3장5~6절]「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 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하면서 자부하였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했으니 그 당시에는 예수를 믿기전에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새 언약으로 개종한 것이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여러번 기록했다. 
[갈2장16절]「사람이 이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하였다. 
그리고 믿음의 법은 한번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다음에는 구원이 결정되어 있지만 율법의 행위는 미래를 결정 지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엡2장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하였다. 
믿음의 법은 믿는 자가 예수님의 피로 한번 속죄함을 받으면 구원이 결정된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요5장24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셨다. 
위의 말씀을 자세히 연구하시면 구원은 믿음에 있고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기독교에서 믿는 그러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와 약속하신 새 언약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온전한 믿음이고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가 어떻게 나타나서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시는지 알아서 믿고 나가야 완전한 믿음이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시일을 두고 믿음의 확신이 오기까지 연구하고 믿음의 연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새 언약의 원칙을 깨달은 사람은 새 언약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은 저희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저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의 법칙은 일반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지로 하나님의 영광이 숨겨져 있는 것과 너무도 큰 차이가 있으므로 쉽게 판단내릴수 없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담겨져 있다. 
주님의 마지막 만찬은 세상은 알수도 없을 뿐더러 일반기독교회에서도 쉽게 알아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새언약 즉, 주님의 마지막 만찬이다. 기록된 바, 
[고후4장4~6절]「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에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라 ···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하였다. 
새 언약의 복음의 영광의 광채는 세상에는 숨겨져 있기 때문에 일반 기독교회에서는 알 수 없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만 새 언약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셨다. 기록된 바, 
[엡1장7~9절]「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하였다 
새 언약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사 하나님의 비밀의 영광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제35장 하나님의 인 치는 사업


[계7장2~3절]「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하셨으며 에스겔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겔9장4~6]「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여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하였다. 
그런데「하나님의 인 또는 표」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해돋는」곳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해돋는 곳은 사도 요한이 계시받던 밧모섬이나 아니면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을 중심해서 대륙에 붙은 동방 끝을 가리킨 것이다. 이 동방에 대하여 구약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겔43장2~4절]「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 그 모양의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때에 보던 이상 같고 ···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하였으며 또는 
[사24장14~16절]「무리가 소리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것이라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하도다」또는 
[사41장2절]「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하셨고 또는 
[사46장11절]「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하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7장2~3절에 인 치는 사업이 동방끝인 한국에서 일어날 것을 보고 예언한 것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국으로 해방시켜준 사람 바사왕 고레스로 일차적 예언이 성취되었지만 실질적 예언 성취는 다 신약시대에 와서 예언 성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인 치는 시기 (시작하는 때)는 어느 때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것이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았다고 하였는데 그 바람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다치기까지 바람을 놓지 말라고 하였다. 바람이 전쟁이라는 것은 모든 성경해석자들의 공통된 해석으로써 땅 네모퉁이를 표상하는 전 세계 대전쟁인 것이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쟁을 가리킨 말씀인데 네 천사는 그 전쟁(바람)을 붙잡고 현재까지 있다. 
그 이유는 십사만사천 성도들에게 인 치기까지 그 바람(전쟁)은 일어나지 못하게 네 천사가 굳게 붙잡고 있다. 
그 바람을 놓으면 제3차 전쟁이 되는 것이다. 제3차 전쟁은 인류의 종말 전쟁으로써 인류는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제3차 전쟁이 일어나기전에 인 치는 사업이 마쳐져야 하기 때문에 네 천사는 땅 네모퉁이에서 바람(전쟁)을 잡고 있으니 우리는 힘을 다하여 노력해야 될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쟁 1939~1945년 이후 짧은 기간동안 살아서 승천함을 받을 수 이쓴 십사만사천 성도들에게 이마에 인이 찍혀져야 하기 때문에 그 수가 차기까지 바람은 놓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택한 백성이라도 인을 받지 못하면 재앙과 제3차 전쟁에서 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인을 받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서 다음 순서로 연구해 보기로 하자.


 ■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인가?


안식일 교회에서 말하기를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주장하나 신·구약 성경을 다 찾아 보아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은 단 한곳에도 없다 다만 안식일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사이에 증거 또는 표징이라고 기록한 것 뿐이다. (출31장13절, 참고) 
만일「증거다 표징이다」하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이 된다고 한다면 할례받는 것도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 
[창17장9~12절]「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세워 지키게할 언약은 이것이니 너희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을지니 이는「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니라」하셨으니 안식일 교회의 주장대로 한다면 할례받는 것이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겔20장12절]「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하신 말씀과 
[창17장11절]「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을찌니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니라」하신 말씀과 비교하여 본다면「언약의 표니라」하신 것이 하나님의 인에 대해서는 더 가까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쪽의 반대되는 서쪽지방인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의 주장에 맞추어 그릇되게 해석한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 갈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보고 기록한 본문이나 헬라원어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본다면「해돋는 쪽으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 치는 천사가 해돋는쪽 동방끝에서 시작되어야 정확한 해석이 된다. 그리고 안식일 교회는 1844년 이후부터 창설된 교회로써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서 바람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네 모퉁이 바람(세계대전쟁)을 놓지 말라고 하였는데 1844년 이후 네 모퉁이 바람(세계대전쟁)이 두 번씩이나 일어났으니 예언과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쟁이 1914~1918년과 제2차 세계대전쟁이 1939~1945년에 일어났으니 요한계시록7장1~3절과는 대단히 먼거리가 되어있다. 그 이유는 성경에는 네 천사가 땅 네모퉁이에서 14만4천 성도들에게 인 치기까지 네 바람(세계대전쟁)을 놓지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 바람(세계대전쟁)은 성경의 반대로 놓아졌으니 말이다. 혹은 네 천사가 졸다가 실수로 네 바람을 놓쳤는지 알 수 없으나 아무리 졸고 있었다 하더라도 두 번씩이나 실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14만4천 성도들은 살아서 변형을 입고 승천할 사람들이라는 것은 안식일 교회에서도 다 인정하는 바인데 1844년 이후부터 14만4천 성도들의 인치는 사업이면 시초에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인을 받고 살아서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예언과 맞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부터 80~90년 이전의 안식일 교인들은 현재 살아 남아 있지 아니하니 그 사람들은 어느편에 속한 사람들인가 성경 해석이 잘못 되면 위에말한 질문에 변명하기 곤란한 것이다. 
14만4천 성도들에게 인치는 사업은 짧은 기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되어 제3차 대전쟁안에 마쳐져야 되는 예언이다.


■ 하나님의 인은 무엇인가?


신약성경 중에서 인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후1장22절]「저가 또한 우리들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1장13절]「너희도 진리의 말씀을 들었나니 이는 너희를 구원할 복음이라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그 허락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 침을 받았느니라」 
[롬4장11절]「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고전9장2절]「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 친것이 너희라」하였으니 위에 기록한 모든 말씀을 연구해 보면 사도직분의 인치심도 있으며 믿음의 의를 인 치심도 있으며 성령받은 것도 인 치신 보증이라고 하였다. 
어느시대든지 하나님의 옳다고 인정될 때에는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7장의 14만4천 성도들에게 인 치는 문제는 마지막 살아서 승천 함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을 가리킨 예언서이다. 
요한계시록7장2절에 하나님의 인은 살아서 예수 재림을 영접할 14만4천 성도들이 즉,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의 인을 받고 마지막 칠 재앙을 면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성도들이다. 칠재앙을 면하는 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밖에 다른 피는 없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만이 구속의 인이 되는 것이다.

 

이 오묘한 진리는 옛적부터 보여 주셨는 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실때에 유월절 지키는 가정 즉, 양의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에는 구원을 받았으며 양의 피가 없는 가정에는 재앙을 받았던 것이다 
애굽사람이라 하더라도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아 나왔으며 (출12장12~14절, 37~38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후 허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역사는 (수5장10~15절) 장래일의 거울이 되어 있으므로 마지막 때에 정결함을 받고 주 예수의 재림을 맞이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을 확실한 예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구약시대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희생의 피라고 명백하게 기록하였다 (출34장25절) 구약시대의 어린양은 예수님을 대신하였던 것이다. 때가 이르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몸으로 인이 되시어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구원하신 것이다. 
[엡1장7절]「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벧전1장18절]「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것이라」또는 
[계1장5절]「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또는 
[롬3장25절]「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롬5장9절]「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골1장20절]「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행20장28절]「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위에 기록한 말씀과 같이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구속 화평 화목 의로움 죄사함 피로 사심 등등의 모두가 십자가에 흘리신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의 인이 된 것이다.

 

■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의 인이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한 인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은 물질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으로 인이 되게 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유월절 어린양의 피만 먹고 마신다면 생명이 있으며 영생에 들어갈 특권이 있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우리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다고 한다. 이런 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가진 교회는 다 그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실지와 맞지 않으면 모두가 다 거짓과 이단이 되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지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실물의 우상인 것이다. 진정한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은 주님의 가르치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며 유월절 성만찬 예식만이 구속의 인이 되는 것이다. 
[눅22장7~20, 요6장50~57절] 예수님은 최후의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잔을 드시사 말씀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가 너희 구속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하시며 인을 쳐 놓으신 것이다. 
출애굽할 당시의 유월절 양의 피로 인하여 구속함을 받은 것은 (출12장12~14절) 신약시대에 있을 거울이었는데 구약시대 거울을 봄으로 실물의 완전한 유월절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약에 와서도 새 언약의 유월절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 (어린양의 살과 피로 이 죄악 세상에서 구속함을 받고 마지막 칠 재앙을 면하고 하늘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것을 구약 역사 속에는 다 볼수 있도록 모형을 두신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재앙을 면하는 자들과 마지막 재앙을 받는 자들의 예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겔9장3~6절]「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하였다. 
이 땅에 재앙면하는 표는 애굽에 재앙내릴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 된 것같이 (출12장12~14절 참고) 마지막 칠 재앙 내릴때에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라야 그 큰 재앙을 면하는 것이다. 
평시에 사람들 마음대로 행하는 성만찬은 유월절이 아니다. 유월절은 반드시 닛산14일 저녁에 행하는것이 유월절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의 인 침을 받고 재앙을 면함을 받는 것은 반드시 유월절에 성만찬을 행해야 되는 것이다. 

안식일교회 여선지자 화잇부인도 에스겔9장3~6절의 예언은 마지막 때에 14만4천 성도들에게 재앙 면하는 구속의 표라고 기록하였다. 
(증언보감 1권 415페이지)「특히 교회를 위한 사업을 마치는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이 능히 설수 있는 14만4천명에게 인 치는 사업을 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의 잘못을 깊이 느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사업에 관한 선지자의 예증 가운데서 손에 각각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사람들로 표상되었다. 이 사람들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가라사대 너는 예루살렘 성읍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의 이마에 한 표를 두라 이때에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겠는가? 이 말씀중에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성령의 능력이 그들의 마음속에 성취하신 사업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순결한 표를 받는 사람들은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으로 표시된 사람 즉 교회안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다」하였으니 안식일 교회가 현재까지는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또 기록하기를「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찍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나 천사는 읽을 수 있는 표이다. 왜냐하면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엘린지화잇주석 SDABC7권 968페이지) 
또 기록하기를「얼마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러 갈때에 지나쳐 버림을 당한다는 생각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엘린지화잇 SDABC 7권 969) 하였으니 만일에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될 것 같으면 벌써 하나님의 인들을 받고 있는 도중이 되어야 할 터인데 화잇부인 자신도 아직 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하는 말의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화잇부인은 하나님의 인을 구속의 표라고 하였다. 이 특권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빠는자라야 받게 되는 것이다. (계7장14절 22장14절 비교)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고 넘어가서 표없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으로 표시한 것은 옛날 출애굽 당시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속의 표가 된 것같이 (출12장13절) 남은 백성들에게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속의 표 곧 하나님의 인이 되어 마지막 재앙에 멸하는 천사로 하여금 볼 수 있는 구속의 인을 받는 것이다.

 

제36장 엘리야를 보내리라


옛날 구약시대의 이사야는 그의 계시중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에 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보았던 것이다. 기록된 바 
[사40장3절]「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하였으며 또는 
[사40장6~11절]「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붐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시었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말3장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은 예수초림 당시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그 예언의 일부가 성취되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 가지고 있던 바리새 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형식과 교만 가운데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유전과 사람의 가르친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 (마15장7~9절) 
이와 같이 패역한 백성들이지마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자비로써 구원의 기별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영광의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비로써 보내주신 선지자를 멸시하였던 것이다. 
비록 패역한 족속일지라도 한때는 하나님이 같이 하신적이 있었던 백성이라 하나님의 음성을 약간 기억할 수가 있었던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장1~3절) 하는 외치는 소리에 양심의 찔림을 받게되어 친히 가보지는 않으며 앉아서 사람을 보내어 형편을 알아보고 있다. 

[요1장21~23절]「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하였다」 
이사야가 예언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하면 침례 요한이 자칭 엘리야라고 하지 아니하여도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줄을 알게 된 것이다. 선생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은「광야의 외치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들중에 요단강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몸차림과 화려한 값진 옷차림은 요한의 눈에는 독사와 같이 보였던 것이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한벌은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3장7절]「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하였다. 세상 영광이 눈을 가리운 바리새 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책망을 듣고는 감당치 못하여서 다 물러갔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순진한 백성들은 구약선지자들의 예언들을 생각하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괴로움과 권세자들의 학대는 날이갈수록 심하여 가고 있었으며(마23장4절) 더구나 로마의 식민지로서 외국인들의 학대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 사람들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주어야 하였으며 로마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면 오리까지의 짐이라도 들어다 주어야 되는 시대였다 (마5장39~42절) 이러한 괴로운 세상에 살고있는 그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부패된 지도자들의 교훈은 썩은 심령에서 나오는 교훈이라 썩어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큰소리로 백성들을 가르치며 길가에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행동은 (마23장1~7절) 순진한 백성들에게 슬픔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좀더 밝은 빛을 찾으려고 갈급하였던 때에 때마침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장1~6절) 하는 놀라운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절망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마5장2~10절) 그들은 다시 옛적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서를 살피게 되었으니 기록한 바, 
[사40장9~11절]「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였다. 
이와 같은 예언의 시대가 돌아올 것을 명상하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도 그들에게 기쁜 예언을 하였으니 기록한 바 
[말3장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 예수초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인 것이다. 요한은 백성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요1장23절,사40장3~9절 비교) 하였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예수 초림과 재림을 포함한 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신다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굶주린 백성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같이 아름답게 들려왔던 것이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백성들은 여러가지로 질문하기도 하였다. 
[눅3장10~14절]「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벌 있는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하고 각 사람의 형편을 따라 대답하였다. 
그러나 시온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여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다 기쁜 소식은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나 지도자들의 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증오심을 일으킬만한 역경의 기별이라고도 할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의 기별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진리를 믿고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도 있었으니 요한은 예수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이기 때문에 요한은 항상 외치기를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요1장36절]「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마3장11절]「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요3장30절]「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며 메시야의 대해서 항상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은 거의 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다.


■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


침례 요한 당시에 있었던 역사는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나간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역사의 예언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그 모든 역사는 인류의 종말인 오늘날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한 모든 말씀은 거의 다 장래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일을 알아 보자면 지나간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 봄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된 바 
[전3장15절]「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이미 있었고 장래일도 옛적에 이미 있었으니」또는 
[사46장10절]「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보여 가라사대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0장11절]「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하였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으로 명백하게 증거하였다. 
[말4장5절]「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때이다」(말4장1~3절) 
그러므로 침례 요한을 보내사 엘리야의 사명으로 예수초림의 길을 예비한 것같이 마지막 때에도 엘리야를 보내사 진리로 인하여 굶주리고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오시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것이다. 
화잇부인도 마지막 엘리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엘리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살아 있을 성도들의 상징이었다」(예언의 신 P·K227) 하였다.


 ■ 예수재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혹은 생각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들 한다. 왜냐하면 기록한 말씀에 
[눅16장16~17절]「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 초림에만 관해서 예언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라는 말씀이다. 만일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한다면 요한 이후에 나오는 선지자가 엘리야의 사명이 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가서 그리스도가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야 즉 예수초림을 증거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란 말씀이다. 
침례 요한 이후로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장래일이나 현재 일을 예언하는 사람은 다 복음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죽은 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행21장10절]「여러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또는 
[행11장27절]「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또는 
[행13장1절]「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또는 
[행15장32절]「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하고」하였다. 그리고 신약성경에도 분명히 선지자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바, 
[고전12장28절]「하나님의 교회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하였으며 또는 
[엡4장11절]「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하였다. 
이와 같은 선지자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도 당시에만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는 선지자가 없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도시대에 선지자가 있었으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당시에나 오늘날이나 다 같은 복음시대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히려 예수 재림의 시기에 큰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였다. 기록하였으되 
[말4장5절]「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어느 시대이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재림의 길을 예비할 마지막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옛 세상은 다시 되풀이 하고 있다. 침례 요한은 예수초림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에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심을 재 부흥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히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말씀하시기를 
[막9장12절]「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것을 회복하거니와」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초림때만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재림 때에도 먼저 엘리야를 보내사 부패된 부분을 회복하여야 된다는 말씀이다.


■ 선지엘리야를 보내리라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무너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하므로 구원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말4장4~5절]「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혹은 이 예언이 예수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엘리야의 사명이 끝을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크게 강조한 일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결과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써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기별은 예수 초림때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과 같이「극렬한 풀무불 같은」날이 이며「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실 때이다」(말4장1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에 대하서 엘리야라고는 말씀하셨지만(마11장4~9절, 17장10~13절), 말라기 4장5절을 증거하신 적은 한 군데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말씀이 있다.(마11장10절, 막1장2절, 눅7장27절) 과연 말라기 3장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 
[말3장1~3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자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그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한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요7장14~29절) 
그러므로 말라기4장의 예언이 다 같이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나 그 예언서에 나타난 시대에 관한 문제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3장1절이나 말라기4장5절은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에게 일부 그림자로써 약간 보여 주었을 뿐이며 그 예언의 완전 성취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예언이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옛적 실지 엘리야가 살아서 승천하였기 때문에(왕하2장11절) 살아서 변형을 받고 승천하게 되어야 한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살아있는 산 성도 14만4천명과 함께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이 가까운 시일이 되면 먼저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주의 재림을 눈으로 보는 것같이 완전한 증거로 증거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


엘리야라는 이름을 번역한 즉「하나님 여호와」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마27장46절]「제9시(오후3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하였다. 
그런고로 「엘리」는 하나님이요 「야」는 히브리 원어에「야훼」즉 여호와이다.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을 표상하는 뜻이다. 
엘리야의 역사를 대강 연구하자면 엘리야의 거주지는 요단동편, 갓지파의 땅, 길르앗지방 디셉사람이라고 하였다. 때는 주전 912년경에 활동한 사람으로서 의복은 털옷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겸박한 사람이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나라가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김으로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 
[왕상17장1절]「디셉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하며 요단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까마귀들이 조석으로 떡과 고기를「한때」일년동안 물어다 주어 먹고 있었으며 (왕상17장2~7절) 그후 엘리야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그곳 과부에게「두때」2년동안 살다가 (왕상17장8~15절) 2년후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아합왕을 만나 바알신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 합850인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하기 위하여 갈멜산에 모이게 하고 850대1로 대결함으로 승리하는 동안「반때」6개월이 되었다. 
엘리야가 갈멜산 산상에서 기도함으로 큰 비가 내려 풍성한 열매를 내게 하였다 (왕상18장1~46절) 
그래서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한때 두때 반때」의 예언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고 (단7장25절,12장7절 참고) 사도 요한도 옛날 아합왕과 이세벨시대의 역사의 예언이 신약시대에 와서 반복될 것을 계시로 보고 기록하였다(계2장20절과 12장14절 참고) 
엘리야 당시에 3년반 (눅4장25~26절) 의 예언이 복음시대에 와서 다시 반복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당시에 엘리야는 이스라엘 나라 동편 요단강 동편에 살고 있던 사람이다. 마지막 엘리야도 동방에서 나타날 것을 보이신 것이다. 엘리야는 역사상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승천하여 옛날 멜기세덱과 같은 분이요. 하나님의아들과 방불하다. 기록된 바 
[히7장2~3절]「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신 말씀과 같이 암행시에 오시는 육체의 하나님을 표상한 것이다. 
마지막 엘리야는 암흑세기동안에 짓밟혔던 진리를 다 찾아 증거함으로 최후 종말을 마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엘리야 (하나님 여호와) 는 최후 심판주로서 변형되는 동시에 14만4천 산 성도들도 천사로 변형되어 승천하게 될 것이다.

 

제 37장 늦은 비 성령에 대한 예언


주전 790년 전 선지자 요엘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욜2장23절]「시온의 자녀들이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저가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시고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리니 곧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음이로다」 이 예언의 말씀을 혹 사도시대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으로 예언성취 된 줄 알 것이다. (행 2장 1~4절) 
그러나 오순절에는 그 일부가 성취되었고 실상은 세상 끝에 나타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기록하였으되 
[욜2장1~3절, 23절, 28~31절]「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들로 떨게하라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름이니 곧 임박함이라 어둡고 캄캄한 날이오 구름과 흑암의 날이니 산꼭대기에 흑암이 퍼짐같도다」 또는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어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푸리니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하였으니 이 예언은 초림 때 일부가 성취되었다 할지라도 완전성취는 세상 끝에 있을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호세아 선지자도 늦은비 성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호 6장 3절]「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여호와를 알 것이요 간절히 여호와 알기를 힘쓸지니 저가 나타나심은 아침같이 일정하여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니 곧 땅을 적시는 늦은비로다」 하였다. 우리가 마땅히 알기를 힘쓸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배워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늦은비 성령받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도 늦은비 성령 내리실 예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슥 10장1절]「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하시었다. 추수의 종말이 가까워지면 성령의 은혜를 특별히 주셔서 교회로 인자의 임하심을 준비시키겠다는 약속이 있다. 성령의 강림을 봄비 내리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늦은 비 때에 그 능력을 더욱 증가하도록 추수 주인에게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는 늦은비 성령 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기록한바 
[슥 13장 1절]「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송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였다.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 샘 근원」 이 무엇이겠는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 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또는 
[슥 14장 16~19절]「예루살렘을 치러온 열국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여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하였다. 혹은 생각하기를 절기와 늦은 비 성령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 하겠지만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고전 3장 16~17절 6장 19절]「우리의 몸은 성령의 거하실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은 또한 우상으로 더럽힌 곳이나 가증한 곳에 계실 수 없다. 그러면 사람들의 몸으로써 완전한 의인이 있는가? 
[롬3장 10절]「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으며」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의인이 있는가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롬 3장 9절]「그러면 어떻게 되리오 우리는 저희보다 (믿지 않는자보다) 나은 자뇨 아니라 대개 우리가 일찍 말하기를 유대 사람이나 헬라 사람이나 다 죄 아래 있다 하였느니라」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의로 성령을 받을만한 정결한 성령의 전이 되지 못하므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성령이 임재하시게 되는 것이다. 구약당시에도 우상을 더럽힌 성전을 속죄 제물의 피로 정결케 한 후에야 그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게 되고 그들의 기도는 응답받았던 것이다. (왕하 23장 1~25절, 대하 30장 1~27절 참고) 그러므로 
[습3장 18절]「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내가 모으리니」 하였으며 스가랴 선지자는 (슥14장 16~19절)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 비를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 비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인데 초막절 절기로 몸이 정결해져야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이다. 이 앞으로 모든 사람은 선물을 한가지씩 받게 될 터인데 절기를 지키는 자에게는 몸이 깨끗게 되었으므로 늦은비 성령을 받게되고 절기를 지키지 않는 자는 몸이 더러워 재앙을 받게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에 말씀을 인정하시기 위하여 초막절중에 성전에 오르사 날마다 전도하시고 초막절 끝날에 말씀하시기를 
[요7장 37~39절]「사람이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사람이 나를 믿으면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셨다 (참고 요 7장2절, 14절). 그날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오순절에 부어주실 성령을 일부 말씀하셨으나 실상은 스가랴 선지자와 동일한 예언으로써 말세에 내리실 늦은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예언상 초막절은 마지막 말세 추수 때를 가리켜 예언하신 것이다. 화잇부인은 초막절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초막절에는 기념하는 의미 이외에 상징의 의미도 있었다. 그것을 과거의 광야 여행을 상징할 뿐만아니라 수확의 절기로서 땅의 열매의 수확을 축하하고 주께서 알곡을 곡간에 모아들이기 위하여 추수꾼을 보내시는 최후의 수확의 날을 예표하였다」 (예언의 신 pp.541) 그러므로 
(슥14장 16~19절)의 초막절을 지키러 온다고 한 것은 마지막 말세에 절기 지키는 남은 백성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스바냐 선지자는 구원받을 남은 백성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습3장 18~20절]「내가 대회로(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리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는 구원하여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는 
[습2장 1~3절]「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 같이 날아 지나가기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 하기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하였다. 
스바냐 선지자는 주전 640년으로부터 609년까지 31년 역사를 가지고 있던 유다왕 요시야 시대 선지자로써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함에 대하여 멸망과 살육을 당하지 않고 구원받을 백성들은 오직 주의 규례를 지키는 모든 겸손한자들 곧 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만이 화를 면할 것이며 다니엘과 같이 포로가 될지라도 명성과 찬송을 얻게히실 것이며 각국에 흩어졌을지라도 본국으로 돌아올 길이 열릴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예언이 썩어져 없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세인 예수 재림하실 직전 곧 지구의 멸망이 임박한 시기를 당해서 이루어질 일들을 가리켜 예언하신 말씀이다. 화잇부인은 이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스바냐가 말한바 유다에 대한 임박한 심판의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 회개하지 않은 이 세상에 내릴 심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언의 신 PK389 페이지) 하였다.

 

제 38장 생명수 샘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메시야의 오심과 그 메시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55장1~6절]「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들(예수)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그리스도)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하였다. 
위에 기록된 말씀을 해석한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메시야가 와서 메말라 죽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실 것을 계시로 보고 기록한 말씀이다.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 하느냐」 이 말씀은 성경의 진리가 아닌 거짓 진리를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또 수고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기록된 바, 
[암8장11절]「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것이 기갈이라」하였다. 
그러므로 양식이 아닌 것은 거짓 진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곧 이어「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는것을 먹을 것이며 (성경의 진리를 먹는다는 말씀이다. 에스겔3장1~3절)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히13장20절 참고)을 세우리니 곧 다윗(그리스도)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그리스도)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하였다. 위의 말씀은 장차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가리켜 예언하신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때에 그를 부르라」 위에 말씀도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 즉 그리스도를 두고하신 예언이다. 이 예언서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예언의 성취는 1900년전에 육체로 오신 예스그리스도께서 초막절 끝날에 외치시며 
[요7장37~39절]「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하였다. 
위에 말씀은 1900년전에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그러나 세상 끝날에도 또 그와같은 말씀이 반복되고있다. 
[계22장17절]「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것이요 목마른자도 올것이요 또 원하는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하였다. 
성령과 신부는 어떠한 모양으로 와서 외칠 것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2장48절]「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라」하셨고 또 기록된 바, 
[계19장11~13절]「또 내가 하늘이 열린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자가 없고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하였다. 그 말씀이 또한 육신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1장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였다. 
위에 기록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신것은 1900년전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지만 마지막에도 말씀이 심판하신다고 하셨으니 그 말씀이 육신이 안되고서야 어떻게 성령이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요한게시록22장17절에 있는 말씀은 1900년전에 초막절 끝날 외치신 그 예수님이 다시 육체를 쓰시고 외치시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또는 
[요17장 17절]「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말씀 하셨고 또 성령은 곧 진리라고 도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요일5장7절]「증거하는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하시었고 또한 진리가 자유케 한다고도 하시였고 아들이 자유케 한다고도 하시었다. 
[요8장32~36절]「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하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2절)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하시었다 (36절) 그러므로 성령은 진리, 진리는 아들, 아들은 어린아기로 탄생하실 수도 있다. 성령이 마리아의 몸을 빌어 어린아기로 탄생하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마1장18절]「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것이 나타났더니」하였다.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다. 기록된바 
[요4장24절]「하나님은 성령이시니 예배하는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하시었다. 그런데 「목마른자도 올것이요 또 원하는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시었는데 목마른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생명수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일까? 구약선지자 스가랴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하였다. 
[슥13장1절]「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였고 또 기록된바 
[슥14장8절]「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하시었는데 생수가 솟아나는 예루살렘은 어디를 가리키는 말씀이며 그 생수는 무엇을 가지고 하신 말씀일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33장20~21절]「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라」 하시었다. 
「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은 중동지방 이스라엘 나라가 있는 시온성이 아니다. 새 언약으로 세워놓으신 하늘 예루살렘이다. 기록된 바, 
[히12장22~24절]「그러나 너희가 이른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된 의인의 영들과 새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하시였다. 공동번역에는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하시였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땅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 절기지키는 하늘 예루살렘성에서 생명수를 마실 수 있으니 연구하시면 다 알게 될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생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6장51~53절]「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었는데 누가는 이 생명에 들어가는 예수님의 살과 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눅22장7절]「유월절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하라」 하시였다. 그리고 이 유월절 떡과 포도주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22장19~20절]「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시였다. 생명은 이것으로 우리와 새언약으로 세워주신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이런 성찬예식은 우리도 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행하는 성찬 예식은 생명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의 말씀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떡이 생명이 아니고 포도즙 잔이 생명수가 아니다. 생명과 사망은 하나님의 말씀(예수님의 말씀)에만 있는것이다.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죽는 과일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고 죽게된 것은 「네가 먹는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그 말씀이 죽게 하신것이다.(창2장17절) 그와같이 성찬예식의 떡과 포도주가 생명이 아니라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6장54절)하셨고 예수님의 살과 피에 대해서는 유월절 성만찬 예식을 행하시며 이떡은 내 몸이요 이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과 그 떡과 포도주가 조화된 이것이 곧 생명이 된 것이다. 
유월절이 아닌 약 오천명이 먹은 성찬도 있었지만 (요6장10~11절) 이런 성찬의 떡은 썩을 양식이라고 말씀하셨고 (요6장25~27절) 그 떡을 먹은 사람들이 「많이 물러가고 다시 예수님과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기록되어 있다(요6장66절)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주신 떡이라도 「이 떡이 내몸이」라고 하시시 않으신 떡과 포도주는 천만번 먹었다 하더라도 생명에 들어가는 떡이 될 수 없다. 이떡과 이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고 하신 말씀은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서만 하신 말씀이다. 
혹은 말하기를 유월절 안지키고 안식일 안지키고 살인 강도짓하던 사람도 구원받지 아니하였느냐고(눅23장39절~43절) 반문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십자가 우편 강도가 구원받은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으로 구원받은 것이지 어느 목사가 말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생명의 말씀은 이것이니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장17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요6장54절) 또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장43절) 위에 기록되어 있는 그 말씀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말씀이신 (요1장1~5절,14절 참고) 생명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강도에게 구원주신 것이다. 
그릇된 해석으로 살인 강도라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고 그릇된 교육을 받은 개신교회 신자가 서울 골동품상인 부부를 살해한 사건을 내었다. 그 살인자는 사형장에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며 구원을 요청한 이런 살인범 교인도 생겨났다. 
과연 그 살인 강도가 구원받았을까?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히10장26~29절]「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하였고 또는 
[히6장4~6절]「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였으며 또는 
[요일5장16~17절]「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였다. 
만일 살인 강도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라면 이보다 더 큰죄는 무엇일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의 말씀」이 직접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실때에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목사나 장로가 살인 강도에게 "너 오늘 산다"해서 사는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수 있는 생명수는 1900년 전에 하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귀한 피로 생명수의 샘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구약 선지자들은 이 생명의 언약에 대해 기록하기를 
[사2장2~3절]「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것이요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고 모여들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부터 나올 것임이니라」(미4장1~2절)하였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렘31장31~32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집과 유대집에 새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이 새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날에 세운것과 (모세 율법과) 같지 아니할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라」(히8장7~13절참고)하였다. 
시온에서 세운 율법은 새언약이다. 시온에서 세운 새언약안에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슥13장1절 14장8절 비교) 하였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25장6~9절]「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시온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여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것이며 또 이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이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장7절, 19~20절) 하신 말씀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될것이다. 절기지키는 시온성에서 언약으로 주시는 생명수가 (슥14장8절) 여름에나 겨울에나 항상 흐르고 있다. 누구든지 목마른자나 원하는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22장17절)고 말씀하셨다. 또 기록된바 
[요4장14절]「내가 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시었다.

 

-아멘-

 

1980년12월30일

저자 안 상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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