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님께서 계시던 해운대 운촌 새마을에는 마을 뒤쪽 산에는 산을 깍아 만든 골재 체취장이 있었다.
그 채석장은 부산시의 도로공사를 위해서 골재를 체취하던 곳이다. 그때는 1960년대라 모든것이 어려웠다.
안 선생님께서 생활고 때문에 채석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 하루의 품삯이 "쌀 한 되(1.8리터)"였다. 그걸 팔아서 "보리쌀"과 바꾸어 밥을 지어 생계를 유지 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골재 생산을 기계로 하지만 그때는 자동화가 되어있지 읺아서 아주 힘들게 생산하였다.
그걸가지고 장길자교회는 안상홍님이 석수 일을 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