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안상홍님을 재림예수가 아니고 선지자로써만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자료는 안상홍님께서 주간종교 신문 기자와 대화하시고 기자가 칼럼으로 쓴 기사이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보면 안상홍님 자신이 재림예수로 왔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있다. 내용을 잘 살펴보시고 거짓에 속지마세요.
<기사내용>
소문 안 난 새 종교 (81년 3월 18일 주간종교신문 칼럼)
하나님의 교회는 1964년 안상홍 씨가 창시했다.
그동안 계시받은 것을 터로 책을 만들었다. 현재는 부산(부산시 해운대구 우일동 829번지)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서울, 성남, 제천, 울산, 광안, 진주, 하동, 순천, 전주 등 13개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고 전도 활동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마지막 때 암행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교리 서로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을 가지고 있다.
동 교회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며 6천년 이후의 1천년은 지구의 안식천년이라고 믿고 있다. 향후의 1천 년은 지구의 인간이 안식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교리를 형태를 교리로 삼고 있다. 엘리야의 사명임을 자처한다. 성직자의 칭호는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다.
교리서의 서문에서는 「이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므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사방에서 모으는 중이오니 진리를 갈망하는 자는 지체 말고 찾아와 주면 정확한 증거로 증거해 주겠다. 암행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
동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시기가 현재라고 믿고 있으며 재림할 때는 눈, 코, 입, 귀가 달린 육체를 가지고 탄생한다고 믿는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야 할 이유로 (초림 때 세워 놓은 새 언약이 암흑세기 동안에 짓밟혔으므로 새 언약 생명의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주님이 친히 오셔야 하고 백성과 진리를 찾아내시기 위해 다시 오셔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암행어사로 이 땅에 오셔서 37년간 복음 사업을 하다가 죽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37년간 복음 사업을 펴야 할 이유는 다윗의 왕위가 40년인데 초림 예수님은 3년간밖에 일을 못 하고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재림예수님은 40년을 채우기 위해서 37년간 복음 사업을 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이 말한 새 언약을 중요시한다. 새 언약의 만찬으로 주님과 한 몸이 되지 않고는 주님의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비밀은 초림 시에도 일반 교인들이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마지막 암행 시에도 더욱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영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이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4만4천 무리를 인치는 사업이 3차 대전 이전까지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다 치기까지 바람을 놓지 말라고 하였는데 “바람” 이 곧 “전쟁”이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는다고 했는데 땅 네 모퉁이를 표방하는 것은 세계대 전쟁이다. 2차 세계대 전 이후에 네 천사가 그 바람(전쟁)을 일어나지 못하게 붙잡고서 있는데 네 모퉁이를 놓으면 3차 대전이 일어나 는 것이다. 3차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14만4천 성도들에게 인을 쳐야 한다고 교리 서에서 밝히고 있다.
동 교회가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재림 주님께서 암행어사로 오신다는 점이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암행으로 오셔서 선지자의 역할을 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진리로 인도하시고 멸망 받을 백성들에게는 친히 나타나셔서 예고의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빼앗겼던 생명의 진리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세상 끝 날에 다시 육체로 탄생하여야 한다] 예수의 육체 탄생이 교리의 핵을 이루고 있다.
옛날 세례 요한 때나 예수 초림의 때와 같이 마지막 진리도 큰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게 된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 왜 예수가 암행어사로 와야 하는지의 의문을 교리 서가 자세히 설명치 않고 있어 그 뒤 설명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