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저는 어머니(장길자)교회에서 안상홍님께서 그 당시 37년 동안 석공으로 일하며 매우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있는 많은 사진을 보면 그의 삶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단 생일 케이크를 먹고, 해변에 가고, 이웃과 함께 많은 음식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모두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
답변:
안선생님께서 계시던 해운대 운촌 새마을에는 마을 뒤쪽에 산을 깍아 만든 골재 체취장이 있었습니다. 그 채석장은 부산시의 도로공사를 위해서 골재를 체취하던 곳입니다. 그때는 1960년대라 모든것이 어려웠습니다. 안 선생님께서 생활고 때문에 채석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하루의 품삯이 "쌀 한 되(1.8리터)"였습니다. 그걸 팔아서 "보리쌀"과 바꾸어 밥을 지어 생계를 유지 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골재 생산을 기계로 하지만 그때는 자동화가 되어있지 읺아서 아주 힘들게 생산하였습니다. 그걸가지고 장길자교회는 안상홍님이 석수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일은 37년간 한 게 아니고 몇년 정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답변:
삼단 케이크 - 형제중에 누군가 안선생님 생일이라고 삼단 케이크를 사왔습니다. 안선생님의 모습은 행복한 모습은 아닙니다. 뒷쪽은 집이 너무 허름해서 사진찍는 사람이 3단이불로 막아놓고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많은 음식 - 이 사진은 안선생님 환갑때 부인(황원순님)이 주위의 분들을 초대하여 약간의 음식을 차렸습니다. 이것이 화려한 삶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장길자나 김주철은 없습니다.